분노하고 낙담한 하루. 긴장감 속에 쫓기듯 흘러간 일상. ‘불금’이 간절해질 만하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불금은 대개 소모가 많고 자극적이다. 일상의 독을 배출하기는커녕 술독을 얻어 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밤이 심심한 건 어쩔 수 없고,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놀이가 필요하다.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재미와 만족을 채워줄 마땅한 놀이터가 어디 없을까? There’s no place like home. 먼 데서 찾을 것 없다. 방바닥의 촛불과 쫄깃한 음악이면 준비는 끝이다. 음식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가져오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좋으니 낯선 사람 한 둘쯤 초대하자. 그리고… 방구석에서 우리만의 놀이를 시작하는 거다. 글·사진 안미리

한낮의 폭우 때문에 저녁공기는 맑았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홍대는 부산하고 조금 더럽고, 제 멋에 취한 젊은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역시 홍대는 시끄럽지만 흥이 나는 곳이다. 복잡하다고 혀를 차면서도 머물고 싶은, 이곳만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이 주위를 계속 어슬렁거릴 요량은 아니었다. 알아준다는 디저트 가게에서 케이크만 사면 집으로 들어갈 셈이었다. 근처 어느 골목길에 있는 친구 집에서 모이기로 한 시간은 7시. 콧구멍(천래영)이 케이크가 든 예쁜 상자를 집어 들자, 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시작은 낯 간지러운 자기소개로
오늘의 특별한 밤을 위해 기꺼이 집을 제공한 사람은 달팽이(최새롬)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달팽이는 야채를 끓이고 있었다. 달팽이는 달팽이를 좋아해서 달팽이가 됐다. 아포가토(송우리)는 식탁에 앉아 카나페를 만들고 있었다. 맛살을 조몰락대는 모습이 영 못미더웠지만 잘 씻은 손이리라 믿기로 했다. 아포가토는 커피의 쓴 맛을 삼키지 못해 아포가토만 겨우 먹을 줄 안다. 나머지 한 명은 썩은바나나(안재현). 썩은바나나는 꼭 썩은 바나나 껍질 같은 티셔츠를 입고 요리하는 두 여자 사이를 오갔다. 뭘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는 달팽이와 아포가토, 썩은바나나에게 함께 도착한 콧구멍과 프랑스인(김든)을 소개해 주었다. 콧구멍은 웃을 때마다 코를 벌렁거렸고, 프랑스인은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우리말도 불어 하듯 했다. 이렇게 여섯이 다 모였다. 달팽이, 아포가토, 썩은바나나, 콧구멍, 프랑스인. 그리고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는 외계인(안미리)이다. 


달팽이의 방은 사진과 갖가지 포스터로 도배를 해 놓았다. 형광등을 끄는 대신, 침대맡
에 작은 백열등을 켰다. 방 안 가득 퍼진 노란 불빛에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다들 입꼬리가 올라갔다.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들로 음악을 골랐다. 반경 100미터 내에 카페가 다섯은 되지만, 그 중 어느 곳도 ‘우리만을 위한 공간’이 될 수는 없을 터였다.


외계인 - 이 노래, 누구야?
썩은바나나 - 야광토끼요. 검정치마에서 건반이었어요.


썩은바나나가 ‘야광토끼’에 이어 ‘차가운체리’라는 뮤지션도 알려주었다. 몰랐던 뮤지션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외계인 - 노래 정말 다 좋다. 불토끼?
썩은바나나 - 야.광.토.끼.요.



먹을 것이든 마실 것이든 준비해오기로 했었다. 달팽이가 정성으로 끓여 낸 프랑스 요리 라따뚜이를 메인으로 카나페, 퀘사디야, 생크림딸기케이크까지. 어쩌다 보니 서양식 상차림이다. 그래도 국그릇에 코를 박고 라따뚜이를 마시는 썩은바나나를 보니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그냥 야채요리지. 뭐 거창하게 프랑스식은. 어쨌거나 분명 이국적이긴 했다. 누군가의 집에서 처음 만나 통성명을 하고,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대화하는 게 우리 문화는 아니니까. 스물 다섯부터 서른 하나. 그렇게 친구의 친구가 모였다.





낭만을 노래하는 이 밤이 깊어가네
기타치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열한 시. 방에는 시집이 몇 권 있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펼쳐 들고 시 한 편을 낭독했다. 이해가 안 됐다. 갑갑함을 못 견딘 나는, 같은 시를 달팽이에게 읽히고 프랑스인에게 읽히고 썩은바나나에게 읽혔다. 각자 느끼는 바가 달라, 읽는 목소리와 숨 쉬는 간격이 달랐다. 다시 콧구멍에게 읽히고, 아포가토에게 읽혔다. 갈수록 의미의 윤곽이 살아나면서 다양한 해석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 몇 편을 돌아가며 낭독했다. 김경주 시인의 <봄밤>은 세 번째로 낭독한 시였는데, 이 시의 8연을 두고 특히 말이 많아졌다.


‘밤새 / 남은 새 / 몸에서 밀려오는 요의’


프랑스인 - ‘밤새 남은 새’니까 한 명이 죽었네.
달팽이 - 새는 그 새가 아니라니까!
외계인 - 아냐! 밤새 남은 새는, 진짜 새였어.
달팽이 - 진짜?
썩은바나나 - 앞에서 새들이 떨고 있다 그랬잖아. 죽었으니까.
프랑스인 - ‘몸에서 밀려난 요의’는 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거지.
외계인 - 우와. 줘봐. 내가 다시 읽어줄게.
아포가토 - 음… 흡수할 것 다 하고 남아서 나오는 게 요의이기도 하고.
썩은바나나 - 그러니까 뭔가,
아포가토 - 그래, 뭔가-
달팽이 - 그러니까- 요의는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공포. 밤새 누군가 죽었어!
외계인 - ‘봄밤’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구나.
프랑스인 - 여름에 죽으면 안 되잖아. 봄이 죽음을 극대화한 것 같아.
썩은바나나 - 생동의 계절이니까.


썩은바나나의 기타 반주로 낭독의 밤은 더 풍요로웠고, 우리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행복해했다. 낭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오그라드는가 싶었는데, 눈빛들은 갈수록 총총히 빛났다. 머지않아 이곳이, 우리의 우주가 되었다.


프랑스인 - 알고 보면, 여자 이름이 남 은새 아냐?
썩은바나나 - 밤을 새라고. “남 은새, 밤새!” 이런 거지.
(모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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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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