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다이어트의 최대 장점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야. 그게 어떻게 다이어트냐?”

“열여섯 시간 동안 먹지 않고, 여덟 시간은 마음대로 먹으면 돼. 가령 저녁 여섯 시에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다음 날 열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마음대로 먹어도 되는 거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두 배씩 먹지는 않거든. 나야 원래, 아침을 거르는 편이니까 쉬워. 야식만 안 먹으면 돼.”
“효과는?”
“지금 한 달째인데 좀 봐봐. 턱 선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지 않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쩜. 여자 친구의 외모에 이렇게 둔감할 수 있니?”
“아냐, 아냐, 다시 보니까 약간 갸름해진 것 같아. 진짜야.”
“그렇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닭 가슴살만 스무 해 동안 먹던 헬스 트레이너도 간헐적 다이어트 법으로 가족과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나? 그걸 보면서 눈물을 흘릴 뻔 했어.”
“그런데… 자기는 살을 별로 뺄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나는 조금 통통한 여자가 좋거든.”
“야! 너를 만난 이후로 살이 얼마나 찐 줄 알아? 그 말을 믿다가 이렇게 된 거라고. 3년 전에 입던 옷을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마음을 이해하니? 그렇다고 새 옷을 사 줄 능력도 없잖아.”
“또, 또 시작이다. 1년만 쉰다고 했지? 그동안 새 길을 모색하는 거야. 나도 일할 만큼 했다고.”
“누가 뭐래? 집에서 자꾸 선을 보라니까 그렇지.”
“누가 말려? 나가보라고.”
“뱉은 말은 책임져야 해. 그럼 이번 주에 한번 나가 볼까?”
“어이, 농담한 걸 가지고 이렇게 진지하게 나오니까 좀 의심스러운데. 설마, 벌써 약속을 몇 개씩 잡아놓은 건 아니겠지?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가 혹시 이거냐?”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의심도 풍부하구나.”
“자자, 화를 좀 풀어. 치킨과 맥주 어때? 이렇게 더운 밤엔 최고지.”
“지금까지 뭘 들었니? 일곱 시에 저녁을 먹었으니 자기 전까지는 죽어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방해는 안 해줬으면 해.”
“어… 저녁에 영화도 못 보겠네. 팝콘과 콜라를 못 먹잖아.”
“주말 낮에 보러 가면 되지.”
“친구들과 만나서 술도 못 마시겠네?”
“친구들이 달아나는 건 아니니까 다이어트 기간에 좀 덜 만나려고. 그러니까 영광인 줄 알아. 너는 이렇게 매일 만나주잖아.”
“나도 예전처럼 직장을 다녔으면 어림도 없어. 나 항상 밤 10시에 퇴근한 거 알잖아? 씻고 자면 12시. 다음날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챙겨서 출근. 이런 생활을 5년 정도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완전히 나사가 된 기분이 들어. 절대로 멈추지 않는 공룡처럼 큰 기계의 작은 나사. 내가 없으면 고장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잘 굴러 가더라고.”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남자는 남은 아이스커피를 꿀꺽 삼켰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렇게 힘들었어? 나야 칼 퇴근을 하지만 월급은 쥐꼬리만 하다고.”
“그러고 보니 나도 간헐적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중이네.”
“정말?”
“일을 한동안 쉬다가 다시 하면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잖아.”
“맞아. 우리에겐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건강식품을 먹는 것 보다, 안 먹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맞아.”
“그럼 치킨 먹으러 가자. 너도 한참동안 안 먹었을 테니.”
“좋아. 오늘만이야. 백수를 위해서 직장인이 쏜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가운 커피 때문에 남자의 손에 물이 묻어 있었지만 여자는 남자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서진|소설가.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하트브레이크 호텔> 한 페이지 단편소설(1pagestory.com)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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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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