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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햇빛 아래 노니는 삶

자연, 만나며 드러나는 그 면면의 이야기│땅을 일구며 생을 노래하는 벌교 농부 05


페이스북 친구 중에 도서관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생태수업을 진행하는 분이 남긴 글을 보았다. 생태수업을 하다 보면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생태적 지식 수준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두 세대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자연은 몸으로 만난 경험적 지식이지만, 아이들에게 자연은 과학책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곤충의 집짓기 같은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어른들은 어릴적 벌에 쏘였던 일과 같은 생생한 추억이 복원되며 흥겨워지지만, 아이들은 별반 큰 관심과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기야 생태수업이라는 과목이 흥행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숨 쉬는 현대문명이 얼마나 자연에서 멀어져 있는가를 반증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때론 부드럽게
소박한 시골살이에서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는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연
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모습을 볼 때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집 앞 실개천에서 잡아 온 가재를 물통에 넣고 헤엄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호기심 많은 막둥이는 덜컥 가재를 잡았다가 집게발에 물려 울음을 터트린다. 가족들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을 터트린다. 밤이면 아이들은 후레쉬를 들고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찾아 나서고 큰 장수풍뎅이라도 한 마리 잡은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풍뎅이를 몸에 붙이고 다닌다. 냇가에 가면 다슬기를 잡느라 몰입하고, 발에 있는 각질을 먹으러 몰려든 작은 물고기들이 간질이는 것이 좋아서 시시덕거리며 행복한 얼굴이 된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연이 베풀어주는 선물을 누리며 자연과 더 가까워지고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다.


때론 따갑게
하지만 자연은 늘 그렇게 포근하기만 하고 재미있는 놀이의 대상만은 아니다.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
광 상품으로 즐기는 것과 자연의 속살을 대면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광’하던 사람이 자연의 속살을 대할 때 통과하는 의례가 있는데 소위 ‘풀독’이라는 것이다.피부가 우둘투둘 해지면서 열이 오르고 미칠 정도로 간지러운 증상이 나타난다. 사실 풀독은 직접적인 풀의 독성이 피부에 닿아 생기는 증상이라기보다는 풀에서 살아가는 셀 수 없는 다양한 곤충과 미생물에 대한 면역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다. 그동안 그리고 아직도 그들과 친하지 않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두 번 풀밭에서 놀았다고 자연이 받아주지는 않는다. 나 또한 시골에 내려온 후 무려 5년간 해마다 두어 번 풀독을 앓았다. 풀독은 자연과 깊이 아는 사이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즈음 나는 고구마 밭을 뒤집어 놓는 멧돼지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전기목책기를 설치했는데도 어떻게 뚫고 들어오는지 고구마 밭 여기저기를 들쑤셔 놓아서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처음에는 사흘간 한 녀석이 하룻밤식사로 20여 평씩 뒤집어 놓더니 급기야 온 가족을 데리고 잔치를 벌였다. 하룻밤에 무려 200여 평의 고구마 밭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해마다 멧돼지들에게 100여 평을 헌납해 왔지만, 올해는 이미 500평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우리나라 산천에서 최고의 포식자가 되어 개체 수 조절이 어려운 멧돼지의 경우 다양한 연구와 조화로운 해결점을 찾아야 할 현실적인 숙제가 있지만, 그들이 너무 많은 자연을 차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자연을 수탈하고 훼손해온 인간의 무자비한 파괴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들어야 할 것이다.



자연에서 떠난 인간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들에 핀 꽃에 잠시 시선을 멈추고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인간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가꾸어진 공원이 아닌 일상에서 다양한 생명과 조우를 이룰 수 없는 환경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자연은 오늘도 아름다운 선물로 때로는 반역의 징조로 화해를 요구하며 농부에게 말을 건다.









최혁봉
|벌교 산골살이 여덟 번째 겨울을 살아내고 있는 농부. 자연을 맨살로 대하는 농사야말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온전한 인간이 되는 좋은 길이며, 사회적으로도 다시 되돌아가야 할 삶의 형태라 여겨 자연에서 기도와 노동을 실천하고 있다(주로 참다래와 호박고구마 등을 농사지으며 살림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salimf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