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을 꼽아봅니다. 후보 목
록을 적어볼까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갈릴레이)라든가 “아는 것이 힘이다”(베이컨), 혹은 “악법도 법이다”(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말 자체야 유명하니 그냥 적어두죠)와 같은 문구를 적을 만 합니다. 뭔가 부족하다고요? 이 말이 빠져서 그런가 보군요. 바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서양 근대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말입니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저 말은 그가 쓴 <방법서설>에 들어 있습니다. 사실 데카르트 철학의 진면목은 오히려 <성찰>이라는 책에 더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에는 <방법서설>이 훨씬 편합니다. 애초에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쓴 에세이 형식의 글이니까요. 반면에 <성찰>은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철학서입니다. <방법서설>을 당시 일반 대중도 읽을 수 있게 프랑스어로 쓴 반면, <성찰>은 지식인이 독해할 수 있는 라틴어로 썼다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전문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을 연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방법서설>을 먼저 읽는 게 좋은 선택입니다.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데카르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라던 철학자 헤겔의 말은 데카르트의 책에도 딱 들어맞는 얘기입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책을 추상적 사변과 관념적 지적 유희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삶’이야말로 최대의 문제거리였습니다.

“나는 내 스승들로부터 해방되는 나이가 되자 학교 공
부를 집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내 자신 속에서 혹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강조-인용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학문 외에는 어떤 학문도 찾지 말자고 다짐했다” <방법서설> 중에서.

‘학교 공부’를 마치고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공부하기 시작한 게 그의 나이 20세, 1616년의 일입니다. 그 커다란 책에서 만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리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세상에 나서자마자 ‘30년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전역을 납골당으로 만들었다는 이 전쟁은 데카르트가 22세였던 1618년에 시작돼 그가 죽기 2년 전인 1648년에 끝났습니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이 전쟁 속에서 보낸 것입니다. 30년전쟁은 구교와 신교,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가 벌인 전쟁입니다. 우리에겐 그저 종교전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두 개의 종교로 나뉘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제 진리란 투쟁의 대상이 되었고, 확고한 진리는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인은 전에 없던 불안을 느낍니다. 철학자 강유원은 데카르트 철학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데카르트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30년전쟁 시기
에 자신의 사색을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규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기존의 공동체가 해체되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자율적인 상태에서 살았던 것입니다”<인문고전강의> 중에서.



몽테뉴의 길과 데카르트의 길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할 수 있기를 늘 극도로 갈망했다”<방법서설> 중에서.

그러니 확실성을 향한 이 ‘갈망’은 비단 데카르트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시대인 대부분이 느낀 것이었죠. 데카르트의 탁월함은 이 ‘갈망’에서 시대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이에 응답하려 한 점에 있습니다. 기존의 진리 체계가 무너진 시대, 상대주의와 회의주의가 밀려와 확고불변한 진리가 소멸되어가던 시대, 안정된 토대를 잃고 불안 속에 표류해야 했던 시대, 그런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다시금 확실성의 토대를 새롭게 세우려 한 것입니다. 물론 데카르트의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몽테뉴처럼 전혀 다른 대안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름에 대한 관용의 길이었죠. 하지만 전쟁이 몰고온 가공할만한 상처와 분열과 불안은 사람들이 데카르트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몽테뉴는 데카르트와는 아주 사이가 나빴다. 데카르트
는 오직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만을 찾았으며, 그런 진리는 장소나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없었다. 몽테뉴는 인간의 차이, 즉 인간의 믿음과 행위의 우연성에 매혹되었다. 데카르트는 필연성, 영원성, 즉 다른 말로 하면 비인간적인 것을 추구하였다. (…) 절대적 진리에 대한 주장을 겸허하게 거부하는 것은 고난의 시대에 특히 중요한 또 다른 미덕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관용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근대 전체에 걸쳐 이러한 관용이 부족했는데, 보편주의자들은 그 반대를 주장하였다. 몽테뉴는 삶의 철학을 발전시킨 고대의 기술을 추구하였다. 불행히도 철학의 시대 정신이 나아가는 방향은 그쪽이아니었다”<세상의 모든 철학> 중에서.


‘방법’으로서 의심, ‘용기’로서 의심

그렇다면 어떻게 
참된 앎을 얻을 수 있을까요? 데카르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의심’이었습니다. 진리를 찾기 위해 그는 모든 걸 의심하기로 했습니다. 회의에 회의를 더해도 부정되지 않는 것. 아무리해도 의심할 수 없는 것. 그런 것만 진리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죠.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의심’을 선택한 것이기에 이를 흔히 ‘방법적 회의(methodical doubt, 方法的懷疑)’라고 부릅니다. 그는 일단 감각을 의심했습니다. 바닷물은 멀리서 보면 푸르지만 가까이 가보면 투명하죠. 시각이 우릴 속인 것입니다. 감각으로는 진리를 얻기 어렵습니다. 수학적 진리도 마냥 믿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곧잘 계산을 틀리는 등의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마저 부정합니다. 꿈도 현실만큼 생생하기 때문이죠. 지금 이 현실이 꿈이 아니라고 누구도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우다 보니 컴컴한 어둠 속에서 오로지 한 가지 진실이 빛을 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의심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방법서설> 중에서.

‘Cogito ergo sum’이라는 말을, 생각함에서 존재함을 도출하는 논증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 말은 실은 일종의 선언에 가깝습니다. 확실성의 토대를 인간의 이성에서 찾겠다는 자기선언 같은 것이죠. <성찰>에는 저 말이 ‘ego sum, ego existo’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나는 있다, 나는 현존한다”라는 더욱 노골적인 선언문의 형태로 말입니다. 데카르트는 확실성의 토대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의심’을 선택했고,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도저히 의심할 수 없고, 또 의심해서는 안 되는 원칙을 정립한 것입니다. 우린 이를 통해 과감하게 의심할 때, 역설적으로 도리어 ‘믿어야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데카르트는 전통적 믿음과 감각적 현실을 회의하였기에 ‘생각하는 나’라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상대주의와 회의주의가 몰아친 시대라고 움츠러들고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려 했다면 그는 도리어 깊은 회의와 불안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잿빛 회의를 두려워하는 이는, 자칫 밝은 환영의 방에 갇히고 말 수도 있습니다.


김영수|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50대에도 고전을 읽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50대와 함께 고전을 읽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학교가 아니라 삶을 위해 공부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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