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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8 09-10 미디어 2.0 시대, 달라진 소통

미디어 2.0 시대, 달라진 소통 7 | 블로거 목사, 세상을 치유하다 _ 최병성 목사

에디터 노영신
 

언제부터인가 ‘쓰레기시멘트’ 문제가 블로거뉴스를 통해 등장하면서 그 문제의 심각성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국민의 절반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쓰레기시멘트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 쓰레기시멘트가 아토피를 일으키는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거대언론도, 환경단체도 아닌 그저 한 개인의 블로그를 통해서 세상에 외쳐졌다. 강원도 영월 서강의 아름다운 이슬을 렌즈에 담아 ‘서강 지킴이’로 알려진 최병성 목사가 영향력 있는 블로거로 세상의 변화에 맞춰 진일보 한 것. ‘미친 시멘트’와 싸우느라 조금은 지쳐 보였던 최병성 목사를 만나 블로그로 소통하며 세상을 치유해가는 그의 새로운 ‘목회’에 대해 들어 보았다.


서강 지킴이, 블로거가 되다

그는 유난히도 꽃을 좋아했다. 오래 전, 영월 서강으로 내려가 강가에 외딴 집 하나를 짓고 살면서 카메라만 가지고 다녔다. 그저 꽃이 아름다워 찍기 시작했던 사진 속에서 그는 영롱한 이슬 한 방울이 담고 있는 우주를 보았다. 그렇게 황홀하리만치 경이로운 서강의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려 할 때 사재를 털어 반대운동을 펼쳤던 최병성 목사.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서강 지킴이’였다.

그런 그가 처음 인터넷과 친해진 것은 4년 여 전. 다음(Daum)에서 주말마다 ‘포토에세이’ 연재를 하며 이슬 사진과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조회 수가 5만, 10만으로 올라가면서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과 동시에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성별과 세대와 지역과 상관없이 소통이 가능하더라구요.”

2005년 4월, 그 지역의 공장에서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고 직접 공장을 찾아가 현장의 사진을 간신히 찍으면서 그 심각성에 눈을 떴다. 쓰레기시멘트로 만들어지는 건물은 중금속과 발암물질의 함량이 기준 이상으로 높아 국민의 생명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었다. 돈벌이에 눈이 먼 시멘트 회사의 욕심과 자원재활용이라는 미명 하에 아무런 대책 없이 이를 허가해 준 환경부의 안이함이 만들어 낸 죄악이었다. 그러나 아무 힘도 없는 자신이 거대한 시멘트 재벌회사와 환경부를 상대로 이 싸움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 “한참을 망설였죠. 법 위에 돈이 있는 나라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한 어머니가 아토피로 밤새 괴로워하는 4살 난 딸을 붙들고 울부짖는 걸 봤어요. 그 때 마음을 정리했죠. 이건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다, 라구요.” 그 때부터 신문 기자들과 동행하여 취재하고, 이 문제가 언론의 특종기사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문은 지속적으로 그 기사만 다룰 수도 없었고, 지면의 한계도 분명했다. 일회성 이슈로 묻히기 십상이었던 상황, 알고 지내던 한 기자가 그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목사님이 그냥 직접 쓰시죠?” 그가 블로그를 처음 만나 시작하게 된 계기다.


세상을 바꿔 나가는 한 사람의 힘

당연히 컴퓨터를 잘 다룰 것 같은데, 실상 그는 스스로를 ‘컴맹’이라고 부른다. 사진 위에 설명을 덧붙이는 편집과 글을 쓰고 올리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블로그는 저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워요. 블로그는 신문과 달리 지면의 제약이 없어 사진을 마음껏 올릴 수 있죠. 지속적으로 글을 연재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도 실시간으로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어요.”

블로그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직접 취재를 다니며 쓰레기시멘트에 관한 포스트를 계속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은 현장감을 더해 주었고, 그가 쓴 포스트는 블로거뉴스로 채택되어 순식간에 수많은 누리꾼들에 의해 읽히고 스크랩되었다. 시멘트에 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국내 유일한 시멘트 전문가가 다 되었고, 거대언론이 오히려 그의 포스트를 일차 자료로 인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환경부가 제 블로그에 댓글을 달기 시작하더군요. 저의 블로그가 실제로 1인 미디어가 된 거죠.”

그러나 이토록 영향력 있는 블로거가 되기까지 그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며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시멘트 공장의 일급비밀인 쓰레기들을 사진 찍어 나올 때 트럭으로 막혀 몇 시간 감금되기도 했었고, 일본 쓰레기의 수입 현장을 잡기 위해 낯선 항구에서 밤새 내리는 비를 맞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 블로그를 통해 만나는 네티즌들이 제게는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블로그는 작은 한 사람에 불과했던 그가 이 거대한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요, 친구였다.



생명을 살리는 건 친구를 구하는 일

“당신이 있어 길을 묻고 길을 찾습니다. 당신은 온 몸을 던져 도전하고 변화하고 실천하였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길입니다.” 환경재단에서 주관한 ‘2007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며 받았던 상의 글귀이다. 블로그 기사 하나에 몇 날 며칠의 수고와 땀방울을 들여 세상과 소통하고 변화시켜 나가고자 했던 그의 힘겨움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2007 블로거기자상’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제가 고민하던 문제가 블로그라는 새로운 장이 확산되던 시기와 적절하게 딱 맞아 떨어진거죠.” 하며 겸손해한다.

환경운동가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무어라 생각할까. “저는 목사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지 않을 뿐이지, 이 땅의 생명을 사랑하는 일은 목사의 사역이고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보시기에 좋았던 그 세상이 고통당하고 훼손되어 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단다. “사랑을 하면 용감해져요. 억지로 하는 게 아니죠. 이것은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고자 하는 이치와 마찬가지에요.” 그에게 자연과 지구,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사랑의 대상이자, 친구이다. 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공존의 장을 만드는 일이다.


광장에서 배우는 소통

그는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촛불집회를 통해 자신이 경험했던 웹 2.0 시대의 새로운 소통의 문화가 거대하게 꿈틀거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더군요. 참여, 소통, 공유의 가치를 이렇게 실현해가는 것이 참 놀라웠어요.” 십대 아이들에서부터 샐러리맨, 어르신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생명’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함께 어우러져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고 건강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개인의 가치가 만나 공유되고 성장하는 모습이었어요. 이건 전염병도 전체주의도 아닌 ‘집단 지성’이에요. 똑똑해진 군중이에요. ”

이러한 현실 속에 그는 웹 2.0 시대를 사는 블로거로서, 한 사람의 목사로서 고민한다. 이 시대, 과연 교회의 설 자리는 어디일까. “그리스도인들이 촛불 때문에 교회 내에서 솔직히 갈등을 겪고 있는 걸 많이 봤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지금 우리에게 어떤 세상이 열렸는지 교회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 교회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평화와 화해를 이루어야 할 교회는 갈등과 긴장의 한 복판에서 점점 더 무력해진다. “촛불집회는 이념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축제의 광장이었어요. 자발적 참여였기에 가능한 거죠.” 진정한 소통의 힘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온다. “복음은 기쁨이고 자유에요.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그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시대 속에, 삶 속에 다가가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지갑 깊숙한 곳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서강의 강가에 그가 손수 지었다는 바로 그 집이다. “이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요즘 통 바빠서 못 가고 있어요.” 사진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도 반짝인다. 생명을 사랑했던 사람, 서강에 살며 서강을 지켰던 그가 이제는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며 세상을 다독여 치유하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기꺼이 치러가며.
 


최병성이 띄우는 생명과 평화의 편지 http://blog.daum.net/cbs5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