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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문화동네 사람들

경쾌하게 웃고 단단히 서다│배우 김인권



9 to 5. 출퇴근이 정해진 회사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대가 다른 삶은 어디에나 있다. 매 작품 선택을 하거나 받으며 이어가는 배우의 삶은 출퇴근하는 그것에 비하면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불안감이 늘 깔려 있어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고 잘 살


수도 있고.” 배우로 삼아주셨기에 늘 하나님께 간구하며 삶의 순간마다 감사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배우 김인권의 목소리는 어느 영화에서 만났을 때보다도 따뜻했다. 치열한 배우의 삶과 더불어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의 생활을 살아내고 있다고 말해줬기 때문일까?  원유진·사진 탁영한



더듬거리며 그 뜻을 찾아가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바둑을 틀로 삼아 사람과 사람의 대결을 선과 악의 구도로 그려낸 영화 <신의 한 수>. 김인권은 ‘꽁수’ 역을 맡았다. “바둑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한 영화는 아니에요. 바둑을 두는 데에 고수와 하수가 있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사람은 고수고 또 어떤 사람은 하수인 걸 상징적으로 다뤘어요. 제 역할은 분위기 메이커면서 행동대장이라고 볼 수 있죠. 케이퍼 무비 성격도 있어서 관객이 같이 범죄행위에 가담하는 재미도 주고요.”
배역의 비중을 가리지 않고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제가 주인공을 해야겠다는 욕심도 있죠. 한편으로는 작더라도 작은 역할에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중고등부 시절, ‘문학의 밤’ 같은 행사를 꾸준히 하면서 기도로 시작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 과정에서 제가 하는 일의 취지를 떠올리게 됐죠. 굳이 교회 문화 발전이 아니더라도 인권을 다룬 영화라면, 이런 시나리오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광해>라면, 정치를 다룬 영화가 지금 이 시점에 만들어진다는 것에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그런 게 습관이 된 거예요.” 그러나 조심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다. “그런데‘ 있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제가 하나님하고 대화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어렴풋이 느끼는 거죠.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저는 그래요. 존재를 인정하는 거죠.”
작품을 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역할이 좋을 수도 있고, 감독님과 친분 때문에 시작하는 일도 있다. 직감적으로끌리기도 한다. “어떤 이유인지는 다양해요. 말도 안 되게 아내가 갑자기 추천하는데 그게 믿길 때도 있고, 장모님의 추천도 있고. 자고 있는데 시나리오가 계속 떠오를 때도 있고요. 작품하고 연이 맺어지는 거죠.”
영화 <사도 - 신이 보낸 사람(이하 사도)>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잠을 자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이 영화. 내가 안 하면…, 영화가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하지?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어요. 며칠간 계속 아내나 매니저와 이야기하면서 하기로 했죠.” 


한 걸음 물러서서 큰 그림을 본다는 것
학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김인권은 ‘알게 모르게 배우보다는 연출적인 면에서 보는 눈’에 대해 말하며 조심스러
워 했다. “시나리오를 볼 때 비는 부분이 보이기도 하죠, 제 역할만 보면 되는데…. 관여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좋은 점도 있어요. 배우가 제 역할에만 빠져있으면 현장에서 배역에 더 넣고 빼야 할 때, 못 할 수 있거든요. 연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 연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모아서 확 집어넣어야 하는데, 집어넣다가 빠져나오기도 해서 연기가 가볍게 느껴지는 단점도 있어요.” 
영화 <사도>에서 맡아 연기한 주철호라는 인물에 더 빠져들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편하진 않았어요. 현장은 즐거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역할을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역할도… 어찌 보면 인생을 하나 산 건데, 떠올리기 쉽지 않은 생이거든요.” 독립영화 시스템에서 제작한 <사도>는 북한 현지 생활을 그려내야 했기에 강원도 산골 오지를 찾아다녀야 했다. 추운 날씨에 환경마저 좋지 않은데다 내용 또한 재미보다는 의미에 집중한 것이다 보니 그 무게가 상당했다. “아내는 그런 얘길 하죠. 제가 힘들어할수록 영화는 잘 됐다고.” 하지만 힘든 만큼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다며 아이를 위해서도 배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군대 가기 전에는 그 역할을 살아보겠다고, 욕을 하는 역할이면 욕을 하고 다니고, 술 먹고 길바닥에서 잔다면 술 먹고 길바닥에서 자고 했어요. 배우가 그렇게 하는 것도 맞죠. 그러면 가족이 해를 입고 제 수명이 줄어요. 실제로 사고도 일어나고요. 그래서 적절하게 배분을 해야 해요. 배우의 책임이죠.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도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자기를 다 내던지면서 연기했던, 물속에서 저체온증으로 기절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요.”


소소하게 하나둘 채워가는 기쁨

이렇듯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가족을 생각하는 김인권은 요즘 아이들을 돌보며 설거지나 청소 등 소소한 걸 챙긴다. 소소한 것들로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요즘 드는 생각은 제가 아빠니까 생계형으로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겠다는 의무감에서 놓이면서, 오히려 아내가 큰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살림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제가 소소한 것들을 하면서‘이런 게 있구나’, ‘아내를 섬기며 사는 것이 나쁘지 않구나’를 배우고 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주일이면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서 각자의 부서를 찾아간다. 첫째는 초등부, 둘째는 유치부 예배를 드린다. “셋째는 유아부에 보내기에도 어려서 자모실에 있죠. 그런데 애가 가만히 안 있잖아요. 나와서 교회 안을 돌아다니면서 중등부 애들 찬송 연습하는 거 듣다가 오기도 해요. 애 키운 지가 10년 됐으니까, 그동안 예배를 잘 못 드린 거죠.”
주일마다 예배에 참석하지만, 설교를 집중하여 듣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집안일을 하거나 운동을 할 때에는 기독교 TV나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는다. “창피하지만 성경은 이해를 잘 못하겠어요. 문어체잖아요. 시나리오 하나 읽는 데에도 다섯 시간 걸려요. 시청각 인간으로 자라와서요. 어렸을 때부터 TV를 보고 책은 별로 안 좋아했어요. 성경 읽으라고 하시는데 이해가 잘 안 되니까 말씀을 듣죠. 많이 들을 때는 종일 듣기도 하고 팟캐스트도 듣고요. 목사님 말씀 듣다 보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저도 걸러 들을 수 있는 게 생기고, 성경 말씀도 알게 돼요.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설명해주시면, ‘아, 이 얘기였구나’ 깨닫죠.”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은 영성


서울로 유학을 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다니게 된 교회
는, 방황할 수 있던 청소년기에 신앙이라는 든든한 뿌리를 내리게 해 주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서 연극 하고 찬양하고 그러잖아요. 송구영신예배 드리면 밤새도록 뭉쳐 다니고요. 비뚤어질 수 있는데 교회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연극 하면서 건전하게 보낸 거죠.” 교회 행사로 시작한 무대 경험은 꽤 즐거웠다. 목사님의 칭찬과 지원으로 연극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우리 목사님은 청소년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셨어요. 제가 연기 하는 걸 좋아하니까, 연극 하는 걸 밀어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도 말씀해주셨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영화배우가 됐어요. 신기하죠.” 중고등부 생활을 하면서 비전을 품고 기도하며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감사하는 삶을 체득한 것은 물론, 개인적인 삶의 목표와 사명감을 품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배우의 삶을 시작하면서도 그 마음은 지켜나갔다.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가 제시하는 기준은 보수적이거나 고리타분하다. “우리 중고등부 때는 찬양을 부를 때, 드럼을 치는 것도 상당히 세속적이라고 봤어요. 탬버린까지는 인정했죠. 그게, 열리는 과정인데,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어요. 하나님만 아시겠죠.” 어떤 것이든 경험한 것으로 자산을 쌓아가는 배우라는 직업은 이 부분에서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기독교 문화가 보수적이지만, 원점으로 돌이키는 힘은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성경을 봐도 인간은 내버려두면 망가지기도 하잖아요. 항상 크리스천 문화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야 해요. 기준을 벗어나더라도 돌아올 줄 알아야 하지않을까요? 하지 말라는 걸 했을 때, 다시 하나님 만나서 ‘그러면 안 되죠, 하나님?’이라고 할 줄 알아야 크리스천이죠.”


삶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나씩 깨달음을 얻을 때에는 반갑고 기쁘다. 김인권은 군대에서 예수님이 큰일을 해내셨다는 걸 깨달았다. 꽤 늦은 나이에 전경(전투경찰)으로 차출되어 1년 정도 막내 생활을 했다. 나이는 많아도 막내라 위에서 한마디만 해도 김인권에게는 큰 폭력으로 전달됐다. 그다음 일 년, 고참이 된 후, 예수님을 떠올렸다. “예수님이 무작정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런 게 아니라. 로마 정치인, 바리새인 등 할 거 없이 사람들에게 두드려 맞았잖아요. 엄청 피 터지게 맞았는데, 용서하고 돌아가셨단 말이에요. 대물림이 안 되는 거죠. 선과 악이 싸우는 이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예수님이 다 끌어안으셨기 때문에 크리스천이 이천 년 동안 편안하게 찬양하며 살 수 있는 거죠.” 군대라는 피라미드에서 폭력이 내려갈수록 확대되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에, 고참으로 더는 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김인권은 ‘문학의 밤’이 사라진 요즘 청소년의 기독교 문화에 아쉬워했다. “크리스천 문화가 앞으로 더 활발해지길 바라고 있어요. 그런 영화가 있으면 하나님이 배우를 시켜줬으니 참여하면 좋겠죠.”
중고등부 시절, 하나님을 인정하며 함께 극을 만들고 누렸던 때처럼, 기독교 콘텐츠가 활발하게 생겨나 자리 잡아가길 바랐다. 영화 <사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어갈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며‘ 말로 전하기에는 크고 깊은 신앙’을 전하는 시도가 다양한 곳에서 일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