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생님을 만나다



2012년 2월 8일. 두터운 외투를 벗어던질 수 없는 추운 날씨에 타박타박 일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3-4월 호 특집으로 다양
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싹 틔우는 자리인 작업실을 취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본래 미술에 관심이 있는 터라 편집회의 때 미술하는 예술가의 작업실에 가서 사진을 찍어오겠다며 호기롭게 손을 들었더랬다. 최새롬 기자와 짝을 이루어 말이다. 취재 날 아침에 역에서 만나 작업실까지 가는 길에 섭외 과정을 들었다. 몇 번의 섭외 고충를 겪은 끝에 만나는 분은 설치미술가 조소희 선생님.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는 이름이 나오고, <오늘> 인터뷰이가 나의 고등학교시절 미술 선생님의 아내라는 걸 알았다. 잊을 수 없는 수업을 진행하셨기에 오래도록 기억하며 만나 뵙고 싶었지만 대학 교수가 되며 뵐 수 없었던 그 분! 이웅배 선생님. 떨리는 마음을 안은 채 본연의 찍사 임무를 다했다. 모두 마친 후,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자리.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밥 먹는 동안, 내가 그간 뭐하며 지냈는지 물으시기에, 신학하는 여자인 나는 기독교 안에 미술의 역할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하는 작은 소망을 나누었다. 대뜸 내게 제안을 해주셨다.“ 매주 목요일마다 미술하는 크리스천 청년들이 모여서 공부를 해. 거기에 와보는 게 어때?”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후 그 모임(창조.창작. 회복)에 기분 좋게 발이 묶여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그곳에서 평생 함께하고픈 귀한 짝도 만나고 말이다. <오늘>은 조소희, 이웅배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어 함께 기독교 안의 미술의 역할, 크리스천 예술가들이 바로서기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꿈꾸게 해주었다. 더구나 소중한 사람을 만나 평생 하나님의 꿈을 함께 꿀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꿈과 꿈을 잇대어 주었다. 글 신화민 · 사진 안진우



<오늘>, 
아내를 만나다


글에 대한 첫 경험은 초등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어촌마을에 살았던 나는 바다사랑 글짓기 대회에 나가 시
와 수필에서 입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참가자들은 우리반 친구들이 전부였다. 그 후로 글 쓰는 게 좋았다. 아니 글로멋있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글 쓰는 것이 멋지고 좋은 일이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에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글을 잘 못 쓴다는 사실이다.

내가 <오늘>을 만난 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5년이나 지났다. <오늘>에서 난 주로 지금은 없어진 ‘아름다운
공간’과 교회를 찾아 가는 ‘문화선교리포트’였다. 소개했던 곳 중 생각나는 장소는 청산도, 부산 감천동, 태백 모운동, 필룩스 박물관, 홍제동 개미마을, 문래동 철공단지 등이다. 카메라 하나 들고 폼깨나 잡았던 것 같다. 문화선교리포트는 내겐 수업과도 같았다. 큰 교회부터 작은 교회까지 소신껏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또 목회 경험을 엿듣고 있으면 어느새 내 목회 현장과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을 통해서 얻게 된 가장 큰 보물은 바로 아내다. 2010년 4월 강동구청의 어린이회관을 취재하러갔다가 보육 프로그램을 열심히 소개해주던 그 여자가 지금의 아내다. 취재를 마치고 한 참 지나 다시 연락이 닿았고 한 두 번 만나다 결혼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신통방통하다. 현재 8개월 된 아들 건우까지 얻었으니 누가 뭐래도 난 <오늘>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그리고 <오늘>을 통해 진실된 사람들을 얻었다. 전 편집장인 영신이 누나와 그리고 김준영 편집장 문화선교연구원 사람들, 디자인 생기 사람들.

이젠, 그만 펜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응원할 게다. 잘하고 있다고, 더 힘 내라고, 박수와 환호를 보내줄 게다. 서점에서 <오늘>을 만나면 제일 좋은 가판대에 올려놓을 게다. 그리고 가는 교회마다 <오늘>을 구독해 주십사, 홍보할 게다. 객원기자가 아니라 객원 판매자로 나설 게다. 그동안 글을 읽어준 여러 독자와 동료에게도 감사드린다. <오늘>과 함께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글 김승환


<오늘>, 그녀를 만나다


“‘밖에 해 떴다’ 할 때 그 ‘박계해’입니다.” 학생을 만날 때 선생님은 저렇게 소개를 한다고 하셨다. 이름도 잊을 수 없지만, 그 느낌도 지울 수 없었겠다. 단 한마디 말로 무장을 해제하게 하는 힘이 선생님에겐 있었다. 마찬가지다. 2013년 1-2월 호 특집을 준비하며 인터뷰 요청을 하려고 전화를 드렸을 때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선생님은 한마디 하셨다. “와요, 자고 가요.”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을 얻어먹고 바로 옆에서 한이불 덮고 푹 자고 말았다. 혼자 호사를누린 것이 미안해서 반년쯤 지난 뒤에는 친구를 끌고 갔다. 함지박만 한 그릇에 담아낸 팥빙수를 얻어먹고, 동네 아주머니댁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것만으로는 상당히 부족하다. 친구마저 홀랑 반하게 만든 그 마음이 함창에 있었다. 
9개월쯤 지나서는 그곳에서 공연을 했다. ‘살롱극’이라고해서 카페에서나 할 줄 알았지. 열 명 들어가면 꽉 찰 방 한구석에관객을 모아놓고 무대도 조명도 없이 연극을 하게 될 줄이야! 공연팀까지 채 스무 명이 안 되는 사람이 모여 앉아 공연을 보고 감상을 나누던 그 밤엔 괜히 기분이 좋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오래 비어 있던 집에도 빛을 밝히고 온기를 넣어줄 줄 아는 주인 박계해가 있어서다. 누가 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칼뿐만 아니다. 누군가는 와서 노래하고, 또 누군가는 시를 읊고, 또 누구는 연극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곳. 카페 버스 정류장을 꾸려가는 힘은 박계해 그 자체라는 걸 갈 때마다 느낀다.
그래서일까. 처음 갔을 때에도 그다음에도 나는 자꾸만 함창에 남고 싶어진다. 연고도 일자리도 없는 변변찮은 시골 동네지만, 이웃이 되어 남고 싶은 마음이 자란다. 서울에서 세 시간만 버스를 타고 멀어지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통장 잔액에 떨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선생님이 아직도 월세를 내기 위해 카페 운영 말고도 몇 가지 일을 더 한다고 말씀을 해주셔도, 함창에서 산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귓등으로 듣고 넘기는 중이다. 보증금으로 쓸 목돈만 생긴다면야, 망설일 것이 더 있으려나? 엄마에게 말해봐야 ‘등짝스매싱’ 말고 돌아올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품은 마음은 잊지 않게 종종 찾아뵐 예정이다. 혹시라도 내가 반한 그‘ 마음’을 느끼고 싶다면, 함창 가는 버스를 타자,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글 원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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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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