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 찻집에 있어서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창밖의 사람들이 우산이 없어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을 보니 걱정되기도 한고, 안심이 되기도 했다. 
“책을 찾아야 해요.”
의뢰인은 코트에 묻은 빗방울을 털털 털며 내게 말했다.
나는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의뢰인은 오랜만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상사와 부하직원에게 신임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투가 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지만, 확신에 차 있다. “30년 전 출간된 책입니다. 지금은 당연히 절판되어 없고, 출판사도 벌써 문을 닫은 지 오래더군요. 제가 아는 건 여기 까지 입니다. 책 제목과, 출판사, 그리고 저자를 적어드리죠.”
그는 자신의 명함 뒤에 쓱쓱 그것들을 적어서 내게 건넸다. 마치 서점 직원을 대하는 것처럼 사무적이다. 의뢰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흔들림이 없다.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설렘, 찾지 못할 거라는 불안, 나에 대한 의심 같은 것들이 섞여야 하는데. 
책을 찾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국에는 수많은 도서관과 헌책방이 있으니까. 이상한 것은 명함에 있는 의뢰인의 이름과 찾던 책의 저자가 같다는 점이었다. 찾고 있는 책이 자신이 지은 책인지 물으려다가 왠지, 그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그는 일이 바쁘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물에 얼룩진 명함만 테이블에 남아 있었다.
어떨 때에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 왜 그가 책을 찾는 것인지 수 만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나의 일은 그저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면 되는 것이다. 시간당 3만 원을 받고, 하루에 여섯 시간, 일주일에 5일을 일하며 일을 성사하면 의뢰인이 줄 수 있을 만큼의 보너스를 지급받는다. 이것이 내가 받는 보수다. 이때까지 내가 해결 못한 일은 단 한 건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찾아온다.
중앙도서관을 뒤지고 지방에 있는 몇몇 도서관과 헌책방을 수소문했는데도 그 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말했던 출판사도, 책의 이름도, 저자도…… 비슷비슷한 다른 책들은 있었으나 30년 전에 출판되었다던 그 책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방심했었다.
나는 책을 찾기를 그만두고 그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만나기 시작했다. 아내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까지 조금씩, 천천히.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본다. 혼자 쓰기에는 넓은 서른 평 사무실은 예전에 만화가게였다고 한다. 벽 주위로 빼곡히 책장이 들어서 있지만 지금은 만화책이 아닌 두꺼운 전국 지역별 전화번호부와 백과사전 등으로 차 있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싫어한다. 찾고 있는 물건의 이름을 넣고 엔터를 치는 순간 결과가 나온다. 대부분은 쓰레기 같은 정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인터넷을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검색 결과는 제로.
창 밖에는 바다가 보인다. 언덕 위의 4층에 있는 사무실이라 부산 앞바다와 영도가 다 보인다. 지역 개발 사업 탓에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이사를 가 버려 이 건물에 들어서 있던 가게들은 모두 사라지고 2,3층에 있던 피시방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건물 주인은 흔쾌히 싼 가격에 4층 전체를 내게 빌려 주었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말해두었고, 할머니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설가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소설가 따위는 본적이 없다.
가끔씩 죽은 사람을 찾아달라든가(그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잃어버린 돈을 찾아달라든가(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하는 사람은 봤지만 출판되지 않은 책을 찾아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똑같은 찻집에서 의뢰인을 만났을 때에는 날씨가 화창해서 다들 점퍼나 코트를 손에 들고 다닐 정도였다. 나는 테이블에 그가 찾는다던 책을 밀어 건네주었다.
‘수평선이 머무는 자리, 이선구 소설집, 남해출판사’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가 건넨 책을 손으로 만져본다. 푸른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떠있는 표지다. 18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책을 펼친다. 동공이 커진다. 
“내용이 없어요.”
“당신이 채울 차례입니다. 없는 책을 찾기 위해 나를 고용하는 것보다 새로 책을 쓰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인터넷의 좋은 점을 알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이든 팔고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내용이 비어 있는 책도 만들어 준다.
“고... 고... 고맙습니다. 역시 당신은 뭐든지 찾아주는 군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책임감 있는 샐러리맨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설렘과 흐느낌이 섞인 날 것의 목소리, 바로 사람의 목소리였다.

서진|소설가.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하트브레이크 호텔> 한 페이지 단편소설(1pagestory.com)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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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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