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힘주어 말합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
이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뭘 이렇게 당연한 말을. 국정원 대선 개입, 정부의 전교조 압박,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현역 국회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 2013년 10월 말 신문을 뜨겁게 달군 기사의 제목만 봐도 사람들이 정치에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무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건 인간의 본성이지. 이런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저 유명한 명제에 대한 오해에 가깝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한 건, 인간은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요.


“정치적 동물”은 사실 그리 좋은 번역어가 아닙니다. “폴리스적인 동물”이라고 옮기는 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그리스 본문의 뜻에 더 잘 맞습니다. 폴리스적인 동물? 이게 뭐지? 혹시 우리 모두 경찰 공무원이 돼야 하는 건가?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요. 당시 그리스 지역에는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가 매우 많았습니다. 물론 페르시아나 마케도니아와 같은 대제국도 없지 않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도시국가가 더 우월한 정치 형태라고 자부했습니다. 제국에서는 한 명의 왕이 다수 신민을 통치하는 반면, 도시국가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이 민주적으로 통치에 참여하기 때문이었죠.


국가, 생존을 위한 보금자리 
당시 사람들은 도시국가를 ‘폴리스(polis)’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폴리스적인 동물’이라는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것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표현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려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정치학>을 한국어로 옮긴 천병희 님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흔한 번역을 따르지 않고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이라고 옮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정치 공동체를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생존 때문입니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니까요.


“맨 먼저 생겨난 것이 가정이다. (...) 날마다 되풀이되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이렇듯 가정인데, 그 구성원을 카른다스는 ‘식탁의 동료들’이라고 부르고, 크레테의 에피메니데스는 ‘식구’라고 부른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필요 이상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가정으로 구성된 최초의 공동체가 마을이다. 마을이 형성되는 가장 자연스런 형태는 한 가정에서 아들들과 손자들이 분가해나가는 것이다. (...) 여러 부락으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인데, 국가는 이미 완전한 자급자족이라는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이전 공동체들의 최종 목표이고, 어떤 사물의 본성은 그 사물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가정과 마을을 이루는 이유를 “날마나 되풀이되는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 ‘필요’는 비로소 국가를 통해서 완전히 충족될 수 있습니다. 즉, 국가라고 불릴 정도의 공동체를 이루면 이제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해집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국가보다 작은 규모의 공동체로는 자급자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면 반드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해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국가의 목적이 자급자족에 있다는 말은,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 국가, 가령 페르시아와 같은 대제국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도 담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래서 크기가 크지 않은 폴리스가 국가의 본질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공동체
하지만 국가가 단지 자급자족을 위한 필요의 산물인 것만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도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는다면, 개인은 자급자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 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조금 극단적인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은 인간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
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아니라 본성으로 인하여 국가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거나 인간 이상이다. 그런 자를 호메로스는 “친족도 없고 법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라고 비난한다. 본성이 그러한 자는 전쟁광이며, 장기판에서 혼자 앞서 나간 말처럼 독불장군이다. 이로써 인간이 벌이나 그 밖의 군서 동물보다 더 국가 공동체를 추구하는 동물임이 분명해졌다. 자연은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그런데 인간은 언어(logos)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 언어는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유해한지,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밝히는 데 쓰인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점은 인간 만이 선과 악, 옳고 그름 등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국가가 생성되는 것이다.”<정치학> 중에서


인간은 “언어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입니다. 아리스
토텔레스 전문가들을 따르면, 여기서 ‘언어’로 번역된 ‘로고스(logos)’는 ‘프로네시스(phronēsis)’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프로네시스는 우리말로는 ‘실천적 지혜’로 옮길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서로 이견을 조율하고 선한 일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실천적인 이성 능력, 그러한‘ 실천적 지혜’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했죠. 그런데 당연한 소리이지만, ‘실천적 지혜’는 폴리스 안에서만 발현되고 수행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언어와 의사소통, 윤리적 실천 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폴리스 안에서만 자신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고, 자신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정치, 공동체적 삶에 참여하기
사실 우리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국가 형성의 두 이유 중 첫 번째 것이 훨씬 더 익숙하죠.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개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 시대의 흔한 정서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세기 1장 27절).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인간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창세기 2장 18절). 하나님은 인간을 원칙적으로 공동체 안에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본래 공동체적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이 잘살기 위해서는 돈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인간적 애정, 서로 간의 인정, 가슴을 따듯하게 적시는 사랑, 함께 나누는 희망, 힘내라고 다독이는 위로 등. 우리에겐 ‘사람’과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 공동체의 범위를 너무 좁게 잡지 말라고 권유합니다. 가족과 같은 혈연 공동체나 친구들 간의 우정 공동체만 본질적 공동체인 게 아닙니다. 사실 국가는 우리의 삶에 여느 공동체보다 더 큰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국가 단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두고, 국가가 주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피는 것. 나아가 어떤 국가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어울리는 국가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이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것 아닐까요?


김영수|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50대에도 고전을 읽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50대와 함께 고전을 읽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학교가 아니라 삶을 위해 공부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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