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화 실장의 어린 시절, 큰 집에서 대식구가 함께 살다가 김 실장의 가족만 분가한다. 크지는 않지만 다락방도 있는 집. 다락방, 소녀들의 꿈이다. 근사하지는 않아도 아늑할 만큼 낮은 천정과 작은 공간이 주는 포근함이 있는 장소. 그렇게 김 실장은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 ‘첫’과 ‘내 것’이라는 두 가지의 조합은 어린 소녀를 들뜨게 했다. 매일 다락방을 어떻게 꾸밀지 상상한다. 레이아웃도 짜고 책상을 대신한 상 위의 덮개도 이렇게 저렇게 바꿔 본다. 소품 하나에 달라지는 분위기가 신기하고, 좋기만 했다고 하니 그녀만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그때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

대학 졸업 후 디자인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디자인이 종이 위에서 끝났어요. 그런데 현장은 내 머릿속에 있던 디자인을 1:1의 스케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정말 멋진 일이었죠.” 그렇지만 디자인이라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날마다 일에 치이고, 밤을 새우다 보니 스트레스와 피로는 날이 갈수록 늘었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희열만으로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디자인에 대한 본질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방황의 시기였어요. 다니던 스튜디오를 그만두고 안나푸르나를 등반했어요. 그리고 개인 스튜디오가 아닌 일반 회사의 인테리어 부서로 입사했죠. 그곳에서 2년 정도 경력을 쌓을 무렵 급성허리디스크로 회사를 그만뒀고요. 그 후에 제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인생은 예상치 못했던 일로 급물살을 타기도 한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시절, 그녀가 그랬다. 수술 후 병가를 쓰기 어려워 그만둔 회사는 생각보다 일찍 스튜디오를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빌딩 숲이 아닌 나무를 벗 삼아 산책을 할 수 있는 한적한 길, 서울미술관 건너편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그곳에, 김재화 실장의 스튜디오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가 있다. 바쁜 일이 한차례 지나가서일까? 스튜디오 내부는 아늑하고 차분하다. 디자이너는 김 실장을 포함해서 총 5명. 그 인원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이 많아지면 사업의 규모도 키우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만, 김 실장의 마음은 돈을 많이 버는 데 있지 않다. “규모가 커지면 일도 늘고 자연히 수익도 늘겠죠. 하지만 그만큼 야근을 하거나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아지고, 업무의 강도가 세지는 만큼 집중도는 떨어져요.” 김 실장이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올린다. “늘 급박한 상황에 야근이 일상인 나날, 사실 대부분 디자인 스튜디오의 현실이에요. 저는 스튜디오를 차리면 내가 즐거운 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그런 신념 때문일까? 일을 무리해서 진행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일하며 만족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곳, 부암동

스튜디오가 있는 부암동은 아직 서울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 비하면 주말엔 사람이 붐비지만 한적한 골목, 산과 나무가 곁에 있는 이곳이 좋기만 하다. 미술관도 있고,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과 성곽, 창의문 등 서울의 역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 김 실장의 집도 스튜디오 근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부암동은 그녀에게 살기 좋은 곳이다. 골목마다 사람이 살고, 역사가 살아있는, 진짜 삶이 있는 멋스러운 곳이라며 부암동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눈이 오면 차가 못 다녀요. 그래서 언덕 위에 올라가서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할 수 있어요.”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편함을 삶의 다른 재미와 감성을 찾는 동기로 만든다. 그런 면에서 강남의 규격화된 환경은 지루하다고 말한다. 


마음을 채우는 사람

디자이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시안을 잔뜩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 갖는 자기 공간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 주인’의 코드 찾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정해진 콘셉트 안에서 특별한 2%를 가미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몫이다. “공간을 꽉꽉 채워내지 않아요. 공간의 완성은 디자이너가 하는 게 아니니까요.” ‘공간의 주인’이 자신의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같은 디자인의 공간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공간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녀의 디자인이 심플하면서도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디자인을 완성할 사람을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일의 끝이 관계의 끝은 아니다. “개인 클라이언트는 기업보다 더 밀접하게 얘기가 오고 가요.” 그들의 이야기와 취향을 듣다 보니 일이 마무리 될 즈음이면 어느새 개인적인 지인이 되어 있다. 단순히 갑과 을이 되어 시키는 대로 하거나, 전문가의 말이 우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마친 후면 모두 함께 수고했고, 함께 해냈다는 유대감이 돈독한 우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디자이너들은 스튜디오에서 초를 만들었다. 그 초를 클라이언트들에게 직접 쓴 카드와 함께 배달했다. “별거 아니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감성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들도 초와 카드 안에서 그녀의 큰마음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다시,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

“큰 포부는 없어요. 뉴욕에 있는 부티크 호텔을 한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요.(웃음)”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묻는 말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정도를 유지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만족할 만한 작업을 하고 싶단다. 대기업만큼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개인도 성장하는 곳. 김재화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곳. 그녀가 꿈꾸는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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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고 싶지 않아요. 김재화라는 사람은 하나인데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아내이기도 하고 또 김 실장이기도 하죠.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춰가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부암동, 그곳이 왠지 그녀와 닮은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글 . 박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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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쿄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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