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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

 

늘 현대적인 음악이 주가 되는 찬양예배를 인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반대급부랄까, 몇 주 전 일요일 낮 예배 시간에 드린 전통적 예배시간에 소위 말하는 폭발적(?)인 은혜를 경험했다. 평소 내가 드려오던 다이내믹한 연주와 강렬한 사운드도, 두 손을 높이 들고 펄쩍펄쩍 뛰는 열기도 없었지만, 그저 피아노 한 대로 고요히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만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적 음악예배에서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깊은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다.


동적인 예배, 정적인 예배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현대적인 음악예배가 동動적이라면, 전통적인 예배는 정靜적이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틀린 것이 아니란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전통적 예배는 역동성이 결여되고 형식화된 예배란 그릇된 고정관념에 함몰되어 있었나보다. 각 세대마다 자신이 쉽게 공명하는 예배의 형식이 있을 것이고, 나는 당연히 현대적 스타일의 동적인 예배에 반응한다고 믿어왔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예배 방식이 진짜 예배라 믿는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모든 신앙인에게는 각자의 예배에 대한 정의(定義)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예배란 ‘엄숙’, ‘경건’, ‘거룩’, ‘정결’로 정의한다. 또 어떤 이는 예배란 ‘자유’, ‘기쁨’, ‘열정’, ‘축제’로 정의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의에 따라 예배하기 마련이고, 자신과 다른 정의를 가진 이의 예배가 충분히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의에 어울리는 음악 스타일 또한 있을 것인데, 어떻게 예배하느냐 만큼이나 어디에서 예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의를 조금씩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안에 일기 시작했다.  


‘교회’라는 공간와 ‘현대적’인 음악의 조화

10년 전쯤, 내가 기획한 콘서트에 여동생이 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는데, 그 날의 공연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다. 우선은 교회에서 이런 파격적인 음악으로 공연을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고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교회라는 공간과 현대적인 음악은 당혹스러우리만큼 언밸런스하더라는 거다. 그래서 교회가 아닌 일반 공연장에서 봤더라면 정말 좋았겠다는 얘기를 덧붙였다한다. 사실 당시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어버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수적인 성역 개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애송이 정도로 취급해버린 우를 범한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된다.

고즈넉한 산 어귀의 전통찻집과 홍대의 클럽이 다르듯, 어떤 공간이든 그 곳만의 고유한 느낌이나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교회 건축의 양식을 생각해볼 때, 예전의 교회는 엄숙하고 조용한 곳이었는데, 요즘은 화려하고 시끄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성당을 생각하면 스테인드글라스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은은한 빛 아래 파이프 오르간이 울려 퍼지는 장엄함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불교 사찰만 하더라도 주로 산이라는 독립적인 장소에 고풍스러운 경당, 피워 올린 향과 울려 퍼지는 규칙적인 목탁소리를 생각하면 거기서 시끄러운 뭔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제단(Altar)은 무대(Stage)로 탈바꿈했고, 회중석은 웬만한 극장이 부럽지 않은 편안한 객석이 되었다. ‘콘티 짜는 법’, ‘찬양 인도법’ 등 전문적이고, 현대적인 커리큘럼에 의해 고도로 훈련된(?) 예배 인도자들의 인도에 자연스럽게 끌려가다보면 오히려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고 올려드릴 여지가 없어지는 것을 발견할 때가 적지 않다. 비유하자면 과거 전통적 예배는 화려하지 않지만 여백의 미가 있는 동양화와 같은 느낌이라면, 현대적 음악 예배는 작가의 의도와 묘사가 지극히 세밀하게 구성되어 이견을 내놓기 어려운 정밀화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해보게 된다. 많은 악기나 화려한 음악을 경계한 신학자들의 의견에 일면 수긍이 간다.


뛰어라, 그러나 겸손히 머리 숙여라!
물론 현대적인 예배의 장점 또한 매우 많고, 전통적 예배의 단점 역시 없진 않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현대적 예배로 편향된 경향성은 오히려 정적인 전통예배의 중요성을 묻게 한다. 일주일 내내 현대적 음악의 홍수 속에 지친 이가 구별된 하루, 교회에서 듣고 부르게 되는 음악마저 그와 별다를 바 없는 것이라면 피곤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조아릴 교회라는 특별하고도 구별된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방식이나 음악이 어떤 것일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균형감각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해 보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작년 찬미워십 2집을 만들 때 “Jump But Bow Down, CHANMI!”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생각해 냈었다. 우리는 기뻐 뛰며 춤추지만, 엎드릴 줄 아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청년부 찬양예배에서 춤추고 뛰었다면, 전통적인 일요일 낮 예배에서는 엎드릴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의 예배는, 나의 예배는 정중동靜中動인가, 동중정動中靜인가.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