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3편이 1-1이란 이름으로 개봉됐다. 진부한 3편보다는 1-1이란 표현이 새로웠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 공공의 적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까닭에 마음이 씁쓸했다. 로마 시대에도 있었던 징글징글한 깡패, 이른 바 ‘공공의 적.’ 세상의 축소판인 교회 공동체 안에도 공공의 적은 존재한다. 우울하지만 1-2편은 교회 안에서 상영되고 있진 않은지….


특심이 넘치는 헌신, 예의는 어디로

로마서 1장 후반부엔 하나님도 내버려 둔 사람들이 나열된다. 온갖 불의와 악행, 탐욕과 악의, 시기와 살의,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고 중상하며, 하나님을 미워하고, 불손하고 오만하며, 자랑하고, 악을 꾸미며, 부모를 거역하고, 우매하고, 신의가 없고, 무정하며 무자비한 자들이 그들이다. 심지어 이들은 서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을 두둔하기까지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세어보면, 나의 헌신과 열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헌신과 봉사로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만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아서 나 자신도, 뭘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들이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이런 열심이 열심을 넘어 특(별히)심(하게)이 되었을 때이다. 특심(!)의 칼날에 맞아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상처받아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교인이기 이전에 우린 주님 안에서 하나이고, 또 사랑하고 아껴야 할 형제, 자매들이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만 피가 섞인 가족보다 때로는 더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들 아닌가. 그렇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도무지 예의를 모른다. 자신들이 감당하고 있는 사역이 최고의 헌신이라고 믿으며 전쟁터의 군사처럼 맹렬히 전진하는 그들을 볼 때, 오만은 정말 무서운 것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조용한 헌신이 그립다

헌신은 묵묵히 최선을 다했을 때 의미가 있다. 남이 하는 거 조목조목 다 참견하고, 자기 말이 옳다고 목소리 드높이면서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을 헌신이라고 말하지 말자. 교회에 새로 온 사람에게 상향 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를 강요하면서 “우린 그렇게 안 했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지 말자.

무서운 것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고,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에 있다. 나를 보면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가는 곳 어디나 썰렁한 분위기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내 헌신의 내용을 체크해봐야 하지 않을까.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채 계속되는 특심 어린 헌신은 나중에 쓰나미와 강력한 토네이도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 혹 나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없을까 자중하고, 또 기도하자. 내가 눈물 흘리며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옆에서 누가 “흥, 웃기고 있네. 네 기도를 하나님께서 과연 받으실까?” 라고 한다면 정말 등골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원수를 사랑하라!” 는 계명을 기억하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곧 적을 만들지 말라는 최고의 가르침이다. 거룩한 공회의 공동의 적이 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간절한 기도제목이다.

배성분ㅣ오랜 청년부 임원을 내려놓고 쉼 속에서 서서히 나를 찾고, 발견하는 중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특별하고 소중한 나.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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