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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치유, 우리의 하나됨과 신앙

임성빈ㅣ발행인
 

올 여름은 너무도 무더워서 힘들었다. 그러나 무더위보다 더욱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나날이 양극화되어가면서 소통의 길이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다시 찾고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된 나라를 갖게 된 민족 경축일인 8.15 광복절 행사도 대통령과 야당들이 한 자리에 하지 못하였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좌우로 갈라져서 따로 따로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하나 되지 못한 사회의 모습은 불신과 미움이라는 마음의 상처를 우리들 서로에게 남기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소통을 위한 발걸음이 우리 사회를 치유하여 하나 되는 역사로 치닫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함께 노력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죄인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전제로 할 때 이러한 기대는 헛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사회적 위기의 극복을 위하여 신앙인된 우리들, 교회는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소통과 치유와 하나됨을 위하여 교회가 감당할 역할을 우리는 윌리엄 윌버포스를 배출한 클레팜(Clepham) 공동체를 통하여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대영제국 재정의 1/3을 차지하는 노예무역을 금지시키고, 결국에는 노예제도 자체를 비롯한 수많은 악법을 폐지시킬 수 있었던 윌버포스의 사역은 개인적인 위대함과 함께 공동체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윌버포스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은 클레팜에 함께 모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곧 자신들의 조국인 대영제국에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밀너(Milner)는 성경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통하여 윌버포스에게 하나님 나라를 향한 눈을 열게 하여 주었고, 샤프(Sharp)는 변호사로서 자신의 탁월함을 발휘하였고, 마커레이(Macaulay)는 노예제도의 폐해에 대한 광범위한 현장조사를 담당하였고, 크락슨(Clarkson)은  노예선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하여 무려 317개의 노예선들을 찾아 탁월한 문장력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알림으로써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이들 외에도 윌버포스가 은혜를 체험한 이후 정치계를 떠나 목회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멘토 역할을 하였던 존 뉴톤(John Newton)은 정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것을 조언하여 주었다. 존 뉴톤은 우리 모두가 너무도 애창하는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Amazing Grace)”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윌버포스와 클레팜 공동체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신앙이 우리의 삶과 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둘째 윌버포스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재산과 지위가 모두 사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어진 것임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었다. 셋째 구성원 각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이 그 시대 안에서 신앙인들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민감성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하나됨은 정의로운 사회변혁을 이루는 윌버포스의 역사로 열매 맺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와 교회 공동체를 돌아보자.  소통이 막혀 생긴 상처로 마음이 아픈 이들을 감싸는 우리 공동체로 거듭 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도 클레팜처럼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오병이어처럼 내놓아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내는 교회공동체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 “교회가 있음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