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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어른이 된다는 것

거룩한 뒷담화 1ㅣ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주일 아침 7시, 자명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교회 안 다니는 친구들은 절대로 이해 못하는 무지 바쁜 하루의 시작. 시계 한번 바라보며 한숨 쉬고 잠깐 개구리 자세로 버티기 5분, 하고 있는데 이불이 확 젖혀진다. “안 일어나냐? 이러다가 교회 늦어!” 멋진 교회 권사님이자 훈련된 조교,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아침도 못 먹은 채 교회로 정신없이 뛰어간다. 다행히 예배 시작 직전에 도착했지만 벌써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로 가득한 예배당. 민망한 마음에 낮은 포복하는 군인처럼 허리를 낮추고 자리에 가서 앉는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기분. 에이. 다음부턴 일찍 오면 되잖아…요.

예배 후 이어지는 교사월례회. 이름은 월례회인데 어째 매주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름이나 좀 바꾸시지. 요즘 들어 여름성경학교 준비와 달란트 시장을 겸해서 거의 매주 모이고 있다. 앞에서는 총무 선생님이 목청 돋우시며 열강하시고, 박자 맞춰서 부장, 부감님이 훈수 두시는 낯익은 풍경. 아, 이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틸꼬. 처음에는 이 회의에 나름 소신을 갖고 적극적인 참여를 했다. 그러나 참여 후 돌아오는 것은 산더미 같은 일거리. 일단 말 꺼낸 사람이 책임을 지는 분위기다. 말 안 한다고 다 피해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일이 거론되면 모든 어른들의 시선이 나를 비롯한 청년들에게 일제히 꽂힌다. “청년들이 해야지.” “우리는 나이 들어서 이런 거 잘 모르고, 못 해.” 거기다가 변함없이 넉살좋은 X선생님의 보태기. “선생님, 이번 여름성경학교 때 청년들 어디 없나요? 페이스페인팅도 해야 하고, 슬러시 기계도 맡아주실 분들이 필요한데. 그리고 보조교사… 어쩌구저쩌구.” 그 목소리가 저기 남의 나라 말 같이 들린다. 마지막 날에는 청년들이 환상을 본다는데. ‘오 주여, 제발 환상이게 하옵소서.’
특별히 겨울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2대 성수기 중 하나인 공포의 계절 여름. 각 교육부서에서는 특별히 청년들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애를 쓰며, 청년들은 곳곳에서 밀려오는 구인전화로 몸살을 앓는다. 이 시기에 붙잡힌 청년들 중에는 피로누적을 호소하며 청년 예배 시간에 불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요즘에는 핸드폰 위치추적이 가능한데, 수배(!) 중에 잘 피하다가 계속 안 받을 수는 없어 결국 교육부서 수련회에 붙잡힌 A형제, B자매의 사연은 듣는 청년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처음부터 교사를 마다하는 청년은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감으로 맡은 사역을 충성되게 잘 감당하며, 기쁨과 보람으로 열정을 다 하는 청년 교사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점점 청년들이 교육부서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역에 대한 보람보다는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일 이 년은 열심히 봉사하다가도 끝이 없는 일 속에 파묻히게 되면 점차 지쳐서 뜨거운 열정은 차갑게 식기 마련이다. 이런 청년들의 문제는 단순히 청년부만의 문제는 아니며, 전체 주일학교의 교사수급 문제와 연결된다.
청년 양육이 잘 돼서 소문난 교회는 청년들이 저절로 모이게 마련이다. 청년들의 숫자가 늘면 교육부서의 고민은 서서히 해결될 문제다. 체계적으로 잘 양육된 청년들이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선순환이 계속되어야 한다. 더 이상 공포가 아니라 기쁨과 열정으로 회복된 행복한 여름,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싶어 기다려지는 뜨거운 여름이기를 소망한다.


배성분ㅣ청년부 회장으로, 아동부 교사로 쉴 틈 없는 주일을 보낸다. 그래도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퇴근 후 임원 회의를 하러 교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