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지고, 성령이 충만한 모습을 서로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찬양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흘러서 넘치게 되면 그야말로 시험이 충만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찬양을 통해 은혜 받고, 감동한 사람들의 뜨거움이 얼음보다 더 차갑게 식는 것을 많이 봤다. 물론 우리 주님은 뜨겁던지 차던지 하라고 하셨지만, 찬양사역을 하면서 이렇게 차가워지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혜린 그림
찬양단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곳은 반주팀이다. 드럼이나 베이스, 일렉 기타 등은 그래도 소수라 덜 하지만 신시사이저와 피아노의 자리다툼은 소리 소문 없이 치열하다. 어린 시절 누구나 다 한번쯤은 피아노를 배웠다는 것이 문제이고, 깊이 들어가면 실력 차이가 나서 또 아무나 시킬 수 없는 분야가 건반을 다루는 자리라는 것이 애매모호한 감정싸움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일단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맡긴 후에도 그 안에서 메인과 보조로 나뉘는 과정은 더 복잡하다. 실력에 따라 메인과 보조가 나뉘면 그래도 큰 문제 없이 가지만 교회의 특성상 은혜(!)와 먼저 봉사하기 시작한 경험으로 메인과 보조가 구분되면 메인을 맡은 사람이든 보조를 맡은 사람이든 양쪽 다 스트레스 받고, 부담을 갖게 된다. 세상에서 경쟁가운데 상처받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실력으로 평가 받는 입장이 되면 희한하게(?) 상처는 배가 된다. ‘교회마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교회를 몇 년 씩 떠나 방황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왜 그런 쓸데없는 자기비하, 콤플렉스를 가지냐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회는 먼저 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야 한다. 단순히 교회 출석을 뛰어넘어 깊숙이 교회 사역을 감당했기에 생각보다 이들의 상처는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고 좋아하시는 일이다. 오죽하면 천국가서 우리가 할 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겠는가. 얼마 전 어느 찬양집회에서 몇 줄로 늘어선 찬양단 맨 뒤에서 워십을 하는 자매를 보았다. 눈을 감았다가 떠도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잠시 후에 보니 이젠 울고 웃으며 힘껏 찬양하며 춤추고 있었다. 아마 마이크도 없이 맨 뒤에 서 있는 그녀를 기억하고, 봐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찬양했다. 옷이 벗겨지는지도 모르고 춤을 추며 찬양했던 다윗처럼 그녀도 자기가 선 자리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있었다. 조금 덜 튀면 어떤가. 맨 앞에 서지 않으면 어떤가. 내 자리에서 힘껏 하나님을 찬양하자. 찬양이 넘쳐서 은혜로 얼굴이 환해지는 경험을 한번 해보자. 슬픔 많고, 근심 많은 이 세상 가운데서….
배성분|청년부 회장으로, 아동부 교사로 쉴 틈 없는 주일을 보낸다. 그래도 교회를 섬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퇴근 후 임원 회의를 하러 교회로 향한다.
'오늘,을 읽다 > 어른이 된다는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룩한 뒷담화 6ㅣ공동경비구역 JSA (0) | 2008.12.15 |
---|---|
거룩한 뒷담화 5ㅣ뉴 하트(new heart) (0) | 2008.12.15 |
거룩한 뒷담화 3ㅣ그들만의 리그 (0) | 2008.12.15 |
거룩한 뒷담화 2ㅣ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0) | 2008.12.15 |
거룩한 뒷담화 1ㅣ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0) | 2008.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