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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래의 생산과 소비, 그 건강한 순환을 위하여


고찬용’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음악 매니아다. 유재하 가요제 대상 출신, 재즈보컬팀 ‘낯선 사람들’의 리더, 한국에서 가장 독특하고 복잡한 곡을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진 그의 새 음반이 10년 만에 나왔다. <After 10 years Absence>라는 의미 있는 부재를 달고.
사실 팀이 아닌 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음반으로써는 이번이 첫 앨범이리만큼 그의 새 노래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고, 그를 위해 나는 꼬박 10년을 기다린 셈이다. 앨범을 사고도 나름의 감회에 젖어 포장도 뜯지 못한 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보통은 앨범을 사오면 그냥 다른 일하면서 들어보는데, 그 날은 아내와 아기들을 다 재우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정좌하고 앉아 노래를 들었다. 음악을 다 듣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고찬용의 새 노래를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음악적으로는 10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데, 과연 대중들이 이 난해한 음악을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작금의 음악계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어쩌면 두 번 다시 그의 새 노래를 들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서글퍼진다.

소포모어 징크스
대다수의 음악가의 꿈은 자신이 잘하는 음악을 좋아해주는 이들에게 계속 들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음악해서 떼돈 벌어 한강변에 초호화 아파트 사고, BMW 끌고, 휴가 때면 플로리다에 요트 띄우고 노는 것이 아닐 거란 말이다. 제대로 된 음악가라면, 음악을 만들고 적당한 수입이 생기면 그걸로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그렇게 평생을 음악과 더불어, 팬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이다. 음악가가 해야 하는 최선은 좋은 노래를 ‘생산’해 내는 것이고, 여러분의 일은 그 음악을 정당하게 ‘소비’해 주는 것이다. 이런 건전한 ‘순환’이 건강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가의 새 노래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국 CCM의 최대 위기는 좋은 음악가의 다음 앨범을 들을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다. 음악적으로 아무리 뛰어나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았다 하더라도 대중적이지 않으면 1집으로 끝이다. 소포모어 징크스 (2학년생이라는 뜻의 단어인 소포모어(sophomore)와 징크스(jinx)가 결합한 합성어. 흔히 데뷔와 함께 첫 번째 앨범을 주목을 받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초년생들이 두번째로 거듭남에 있어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 하는 의문점을 나타내는 단어로 많이 쓰임)를 맛 볼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그렇게 스러져간 음악가들을 뒤로 한 채, 소위 유행하는 워십곡, 뜨는 축복송을 재탕 삼탕 우려먹는 이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우습되, 결코 우습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CCM 시장에 새 노래가 없다
주의를 기울여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CCM 시장엔 새 노래가 없다. 생산과 소비의 건강한 순환이 어려워진 CCM 계는 말 그대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문제는 누구도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급성 심부전증 환자를 두고도 그냥 저러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감기정도로 여기는 형국이랄까. 몇몇 분들께 지면을 빌어 정중히 권해 드리고 싶다. 새 노래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는, 아니 그럴 마음이 없는 분들은 제발 앨범을 그만 내시라(이는 작사, 작곡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좋은 새 노래를 찾아내고 모으는 것도 중요한 프로듀싱의 능력이다. 외국 번역곡도 새 노래라고 생각하신다면 글쎄…. 계속 그렇게 생각하시는 수 밖에….). 그대들이 특정 곡들의 범람만 자제해 주셔도 지금과 같은 한국 음악 사역의 퇴보는 어느 정도 멈춰 세울 수 있다.

새 노래에 대한 독자 제위들의 정당한 소비(구입 뿐 아니라 많이 들어주고 불러주는 것) 역시 가장 큰 치료제요 영양제다. 음악 사역자의 꿈은 평생 음악을 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잃어버린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다. 부디 그 소박한 꿈을 이루어 주십사 머리 조아려 부탁드린다.
나는 ‘드림’의 3집이 듣고 싶다. 9년째 기다리고 있다. ‘이무하’의 새 노래가 듣고 싶다. 10년째다. ‘쿨대디’의, ‘한정실’의, ‘손영지’의 새 앨범을 듣고 싶다. 그리고 ‘소망의 바다’의 좋은 새 음반도 빨리 만들어 들려드리고 싶다. 간.절.히.

p.s. 근래 몇몇 신인들이 좋은 새 노래를 들고 찾아왔다. 꼭 그들이 두 번째 앨범을 들고 다시 찾아오길 기다린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