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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역자의 짧고도 슬픈 수명


지난겨울, 음악 사역자들에게 가장 바쁘고 활동이 활발해지는 방학 시즌이 되어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아프게 실감하였다. 여름에 비해 겨울이 수련회나 캠프 등 특별행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도 예전에 비해 음악 사역자(CCM 가수)를 덜 불러주는 듯하다. 얘길 들으니 대형급 캠프에서는 요즘 크리스천 개그맨을 부르는 게 추세라고도 하고, 개인 가수보다는 예배팀이 전체 캠프의 음악을 이끌어 가는 게 대세라고도 한다. 추세든 대세든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 간다는 그나마의 신념을 부여잡고 살아왔는데, 2~3년 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의 사역 횟수에, 이미 잡혀 있던 일정 서너 개가 취소되기도 했다. 막상 캠프를 주최해도 학생들이 모이지 않아서 캠프 자체가 취소된 거라고 하니 참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 문제는 음악 사역자 개인의 생계를 넘어 한국 교회의 미래와 직결될 수 있는 중차대한 상황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총체적 위기감 앞에서 문득 내 자신에게, 혹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들에게 뜬금없는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음악 사역자의 정년(停年)은 과연 언제까지인가?"


표

나는 과연 몇 살까지나 이런 현실을 버텨가며 음악 사역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직업 분류로 볼 때 우리 음악 사역자들은 ‘프리랜서’다. 프리랜서의 직업적 특성상 일이 있으면 바쁘고 없으면 실업자에 다름 아니다. 일이 많을 땐 수입도 꽤 짭짤하고 없을 땐 손가락을 물고 있어야 한다. 물론 짭짤한 만한 수입을 올리는 사역자는 거의 없을 뿐더러, 한국의 음악 사역자 대부분은 ‘고정수입’이란 게 없으며, 따라서 ‘최저생계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각 교단 총회나 노회, 아니면 찬양사역자 연합회나 복음성가 협회에서도 한 푼의 월급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혹 아시는가? 하긴, 천주교 성직자인 친구가 목사인 내가 찬양사역을 하며 교회에서나 교단으로부터 받는 재정지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단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가정을 꾸려가며, 아이를 양육하며 음악 사역을 계속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늘 비판적 시각으로 날을 겨눴던 선후배 동료 사역자들께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

이러다보니 음악 사역이란 결혼하기 전, 또는 젊고 철없을 때 잠시 하는 일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의 사역자들은 결혼 후 채 몇 년을 버텨내지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음악 선교단도 그렇게 많은 선배님들을 떠나보냈고, 최근 팀의 재정 지원을 위해 후원을 요청하려 선배들을 찾았는데 대부분 목사, 전도사, 선교사님들이 되어 계셔서 오히려 후원을 해 드려야 되는 경우도 많았다.
혹시 기억하는가? 몇 해 전 댄스그룹 ‘클론’의 강원래 씨가 사고로 장애를 입었을 때, 그 보상 기준을 두고 법정에서 내린 판례를 보면, 정상적인 활동을 했을 시 댄스가수의 정년을 대략 35세 정도로 보고 보험금과 보상액을 산정했다. 이 기준도 다소 이의의 여지가 있겠으나 이 사건을 지켜보며 나는 음악 사역자로서의 나의 정년을 가늠해보게 되었다. 잠시 미국과 한국의 연령별 음반판매 비율을 살펴보자.

한.미 연령대별 음반구입 비율 대조표
(%) 2002년 기준
 연령/나라  한국  미국
 10대  47  21.5
 20대  31  23.1
 30대  16  20.5
 40대  6  34.9

이 도표가 말해주는 건 미국의 음악가들은 평생 음악을 하며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는 거고, 우리의 음악가들은 20대가 지나면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게 좋다는 뜻이다. 2003년, 전설적인 록 그룹 롤링스톤즈의 리드보컬 믹 재거의 콘서트에(참고로 1943년 생으로 필자의 아버지와 같은 연세이다) 5,60대 팬들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몰려와 열광적인 공연이 되었다는 뉴스에 가슴이 벅찼었다.

누가 음악가에게 정년을 강요할 수 있는가? 인기와 부와 명성의 변화가 그들에게 정년을 강요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음악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팬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그들의 삶과 고민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착한 노래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음악가의 정년의 기준이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야기 거리가 바닥나서, 혹은 음악성에 한계를 느껴서가 아닌,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서 이 일을 그만두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는 일종의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지우려 한다. 루쉰을 인용하자면, 길 아닌 곳도 자꾸 걷다보면 길이 되듯, 내가 꾸역꾸역 걷는 길이 후배들에겐 길이 된다. 내가 버티는 만큼이 후배들의 정년이 된다.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버텨야겠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