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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vs 신해철, 그들의 선택


최근 국내 대중음악가 중 큰 영향력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서도 어릴 적 우상이었고, 현재도 여러 가지 면에서 벤치마킹 대상이자, 롤모델이 되어 주고 있는 이승환과 신해철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9집을 발표한 이승환은 “더 이상 CD라는 매체로 음반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하며 매체의 변화에 따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다운 입장을 천명했고, 신해철은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해 “CD를 구입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앨범을 만들겠다”
는 우직한 발언으로 무게감을 더했다. 말의 외연만 보자면 이건 극과 극의 발언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사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누가 옳고 그른가, 혹은 누가 더 진보적인가, 누가 더 현실적인가에 대한 물음과 평가는 무의미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이제 더 이상 CD라는 매체로서의 이승환의 음반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은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단편적 음악을 넘어서 '이야기'로서의 컨셉 앨범
두 사람은 모두 LP에서 TAPE으로, TAPE에서 CD로의 매체 변천사의 산 증인들이고, 다시 wav, mp3, m4a 등 파일로의 대체로 인한 음악 산업의 판도와 홍보 및 유통 방식의 변화 등 대중 음악계 전반, 더 나아가서 음악을 대하는 대중과 문화 저변의 변화를 절실히 체감하며 그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이들이다. 두 사람의 이런 판단의 기저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그것도 전폭적인)를 보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음악, 또는 음반을 만드는 그들의 '정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대개의 가요계(CCM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가 커버 곡, 소위 타이틀곡 한 두 곡 위주의 음반을 만들고 나머지 곡들은 말 그대로 채워 넣기에 급급했던 전력들을 떠올리자면 한 두 곡 듣자고 앨범 전체를 구매하는 건 소비자로서는 '돈 아까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요계에서 앨범으로써가 아닌 싱글 형식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것은 그리 아쉬울 것 없는 상황일 뿐더라, 오히려 경제적,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이승환과 신해철, 이들은 진작부터 ‘컨셉 앨범(전체의 주제 하에 연관된 스토리와 스타일로 곡을 구성한)’을 지향해 왔고, 그런 면에서 한국 대중음악계에 길이 남을 만한 명반들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음악 그 자체만이 아닌 ‘종합예술로서의 음반’에의 가치를 추구해 온 것이다. 완성도 높은 음악만큼이나 시적이고 시의성을 담은 철학적인 가사, 게다가 거의 소책자를 방불케 하는 두께와 내용의 예술적 시도가 가득한 재킷의 아트워크까지, 이들에게 앨범 제작이란 언제나 음악 작업, 그 이상의 것이었다. ‘명곡’이 아니라 ‘명반’이라 표현한 것에 주목하라. 이들은 자신의 음악이 단편적으로 불려지기보다 하나의 ‘이야기’로 읽히기 원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사실 이야기(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성을 지닌 음악사역자들에게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음반형태는 컨셉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오랜 믿음과 그 현실화는 필자가 데뷔 때부터 지향해 왔던 음악사역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었다.

앨범 대신 디지털 싱글로 변화하는 안타까운 현실
음원의 파일확장자로서의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고, 거기에 일정 부분 순응하고 또 적응해가는 것도 필요하리라는 것이 중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 권의 책을 읽은 것과도 같은, 오히려 그 이상의 감동과 삶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탄탄한 구성과 충실한 내용의 음반 제작이 더 이상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또한, 좋은 재킷 디자인을 통해 메시지를 구체화하여 음악적인 면을 보완하고 형상화하는 ‘종합적 형태의 앨범’ 을 만나기란 이제 매우 어려워졌다.
이제 대다수의 음악사역자들은 제작비의 부족과 효율성을 이유로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음반 대신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어떤 방식으로든 좋은 노래를 많이 남겨주기를 당부 드린다.
필자는 어떻게 할 것이냐, 혹시 모를 질문에 대해 미리 답을 준비해야겠다. 나는 가능한 모든 매체를 동원해 내가 만든 노래와 이야기를 세상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내가 만든 음반을 사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계속 앨범을 만들 것이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