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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어른이 된다는 것

거룩한 뒷담화 10ㅣ사과 같은 내 얼굴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 집이 잘되고, 내 인생이 잘 풀리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될 거라고 믿는 것이 믿음일까? 물론 하나님이 그분의 섭리 가운데 나를 이끌어주시고 나와 함께 동행하실 거란 믿음은 반드시 가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주님을 믿으면서 내 인격이 변하고, 내 성품이 변하고, 내 존재가 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때론 그보다 더 몰상식한 행동을 하면서 기독교인임을 드러내고, 또 주님을 믿는다고 떠드는 것은 아닌지…. 그런 나와 당신과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때인 것 같다.

기독교인이라면 싫어!?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한 친구의 말을 들었다. “난 나중에 내가 사업하면 크리스천 안 뽑아.” “왜?” 라는 질문에 그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책임감도 없고, 그 사람들이 하다 만 일을 다 내가 뒤처리해야 해.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쏙쏙 빠지는 걸 보는 것도 이젠 정말 지겹다.” 같은 기독교인이 하는 말이니 더 충격이다. 또 그런 소리도 들었다. “기독교인들은 인내심이 없어. 조금만 힘들면 이곳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서 관두겠다느니 어쩌구 하더라. 아니,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동생의 친구는 자기 가게의 사장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와, 장로라는 사람이 왜 그래? 정말 양심이 없어. 하는 짓도 얌체 같고, 깍쟁이 같아. 내가 진짜 다시 교회 사람이랑 엮여서 일하나 봐.” 실제로 동생의 친구는 그런 하소연을 하다가 결국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물론 직업을 넘어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크리스천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당수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태도와 행동 때문에 다른 기독교인들이 비난 받는 경우가 무척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무책임하고, 얌체 짓 하고 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개인의 문제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다른 기독교인들까지 이유 없이 싸잡아 욕을 먹게 된다. 그럼 왜 그럴까? 아니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랑 다른 기독교인들이 뭔 상관이냐고 항변하면 될까? 아마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는 기독교인을 비판하던 그들이 교회에 완전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기독교인인가?
비난을 억울해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나를 소개하는 여러 가지 단어 중에 단연 으뜸은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란 꼬리표(!)는 나 혼자만 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내 행동의 결과는 나 하나 욕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독교인 전체로 퍼질 수 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내 삶을 맡기고,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다. 내 삶뿐만 아니라 내 존재가 변화되는 것. 그것이 믿음의 진정한 본질이다. 그동안 난 교회 안에서만 착한 척 행동하고,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못난 기독교인은 아니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사과같이 겉은 빨갛고, 속은 하얀 두 얼굴의 신앙인은 아니었는지를 말이다. 차가운 겨울,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넉넉한 신앙인을 만나고 싶다. 주님을 닮아 겉과 속이 똑같은 토마토 같은 멋진 신앙인은 어디에 있을까?

배성분ㅣ믿음이 무엇인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