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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모탕의 노래 2ㅣ덩그렇게 남아 있던 나날들


선생님. 죄송합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외출증을 끊으려 교무실에 들어섰던 그날. 저에게는 선생님의 표정에 담긴 뜻을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층 높이의 구름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발을 다친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그리고 뛰어내린 이유가 구름다리에서 뛰어내리면 아이스크림을 사 주겠다고 이야기한 친구들 때문이라고 했을 때, 선생님께서 제 손을 왜 그리도 꽉 잡았는지 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야단을 치시지 않는 것이 이상했을 따름이었습니다.
아니 그것도 잠시나마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차분히 판단하기에는 제 아픔이 너무나 컸습니다. 발에서 느끼는 통증은 그래도 견딜만했습니다. 정말 아프고 쓰렸던 것은 가슴이었습니다.
구름다리 밑을 바라보며 오랜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뛰어내렸을 때, 저와 내기를 했던 친구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그냥 교내 식당으로 가버렸습니다.
어쩌면 설마 제가 뛰어내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뛰어내렸고, 무심하게 가버린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막막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또 친구들은 저를 무시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처럼 아이스크림 때문에 친구들과 그런 무모한 내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친구들이 저와 함께 친하게 지내주고, 인정해줄 것 같아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였습니다. 저는 그저 또 하나의 놀림감이 되고 따돌려진 아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점심시간 내내 밥도 안 먹고 덩그렇게 운동장 구석에 서 있다가 발이 아프기 시작해서 선생님께 갔던 것입니다.
병원에 다녀 온 후 선생님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하나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냥 들고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 바닥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개를 들었을 때 선생님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고, 선생님 손에 있는 아이스크림도 녹아서 제 아이스크림 위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제 마음이 아파서 선생님께서 울고 계신 이유를 오래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도 엄마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직장일로 항상 바쁘셨습니다. 제 목에는 늘 아파트 열쇠가 걸려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니까 엄마가 직장 출근 시간을 늦게 하시고, 직접 도시락을 싸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전 부담스러워 싫었습니다. 도시락을 싸는 엄마의 모습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로만 여겨지고, 자식을 향한 욕심에서 나온 행동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가 싸 주는 도시락을 학교에 갖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또 엄마에게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저에게는 이미 1학기말부터 직접 자신이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주는 소중한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 친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 근처에서 만나 도시락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 급식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날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먹게 되었습니다. 변함없이 절 챙겨주는 여자 친구가 있고, 부러워하는 반 친구들의 눈빛은 저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날 아침도 엄마와 도시락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습니다. 학교 근처에서 도시락을 전해주던 여자 친구가 저의 집까지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를 깜짝 놀라게 해서 더 큰 기쁨을 선물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전 도시락을 들고 서 있는 엄마와 또 도시락을 안고 서 있는 여자 친구 사이에서 당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머뭇거리다가 저는 부리나케 여자 친구의 손목을 잡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도시락을 빼앗듯이 갖고 학교로 왔고, 여자 친구도 얼굴이 상기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는지 지금도 신기하지만 그날 선생님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도시락을 보자고 하셨습니다. 한참을 도시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선생님이 발견하신 것은 도시락 밑 부분에 있던 담배와 라이터였습니다. 여자 친구는 늘 장난스럽게 도시락 밑에 담배와 라이터를 놓곤 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지금도 제 책상 속에는 삼십 개비의 담배가 있습니다.
한 개비마다 여자 친구가 써 놓은 귀여운 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아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교무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선생님 표정이 너무나 엄숙하고 심각했습니다. 전 그날 선생님께 아주 심하게 매를 맞거나 긴 설교를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담배와 라이터를 압수하시고, 그리고 어머니를 사랑하냐? 하고 한 마디 물어보신 후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기만 하셨습니다. 쓸쓸한 가을 햇살 속에 서 계신 선생님의 모습 속에서 제가 본 것은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키가 작고 뚱뚱하신 선생님이 왜 키가 크고 마른 저와 같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가 이내 사그라져서 덩그렇게 남은 재처럼 쓸쓸하게 느껴지던 저의 모습.
바람 불면 그냥 날아가던 재의 모습……. 

반항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억눌렀던 어른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12월이지만 2학기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한 이상, 저는 고등학교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출을 했습니다. 머리길이를 단속하시는 선생님 핑계를 대고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휴대폰에 수십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음성 녹음을 남기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세심한 선생님의 구속이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쪽방에서 벗어나 더 깊숙하게 숨어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반 친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가출 경험이 많은 영민이는 결석일수 때문에 졸업을 못하고, 그렇게 되면 대학 입학도 취소될 수 있으니 빨리 학교에 가자고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결석일수가 많다고 퇴학을 시키면  담임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거품을 물고 외쳤습니다.

만약 나를 퇴학시키면 인터넷에 내 마음대로 글을 올려서 담임선생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고, 어두운 밤에 행패를 부릴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영민이가 제 뺨을 후려쳤습니다. 왜 이렇게 멍청한 생각을 하냐? 담임이 널 부른 것은 졸업을 시키려고 오라는 것인데 학교에는 오지 않으면서 자르면 가만 안둔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너하고 담임 중 누가 피해를 입을 것 같냐? 제발 말도 안돼는 이야기 좀 하지 마라 이 자식아! 나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너무 화가 나서, 답답해서,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창 밖에 가로등 밑에 선생님이 서 계셨습니다. 아마 제가 했던 이야기를 다 들으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씩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흔드셨습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라고 크게 외치시면서 선생님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제가 창으로 뛰어내리는 줄 알고 달려들었던 친구들도 함께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구름다리에서 뛰어내릴 때도, 여자 친구의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왔을 때도, 그리고 지금 학교와 집을 뛰쳐나온 이 순간에도 선생님은 저와 함께 계셨던 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으시고 왜 우셨는지, 도시락을 열어 놓은 채 왜 창 밖을 바라만 보고 계셨는지, 가출한 제가 있는 쪽방 앞 골목에서 왜 서성거리셨는지……. 그것은 선생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신 것이고, 저의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외로운 것만 가슴 아파한 나머지 선생님을 외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 외로운 나무에게도 바람이라는 친구가 있다고 말씀하신 선생님. 이제 제 옆에는 밤에 떼로 몰려와서 뺨을 때리는 친구들. 그리고 슬픔을 감추고 웃음을 보여주시며 늘 함께 해주신 선생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문경보|흔들리며 피는 꽃과 같은 아이들에게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대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그는 늘 아이들과 함께 할 무언가를 꿈꾸며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