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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아름다운 당신의 오늘

암을 넘어, 산을 올라, 길을 달리다 l 산악인 & 마라토너 곽정란

그런 만남이 있다. 물음표보다 느낌표가, 마침표보단 쉼표가 먼저 떠오르는 만남. 고개 한번 끄덕이는 일이 질문이 되고 입가에 흐르는 미소는 대답이 되는 그런 자리 말이다. 유방암을 이겨내고 독서운동가에서 전문산악인으로, 것도 모자라 마라토너로 살아가고 있는 곽정란 씨. 그녀
와의 인터뷰는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기자라는 이름조차 거추장스럽게 만들었다. 자신의 삶을 ‘왜?’라는 의문사 대신 ‘오!’라는 감탄사 속에 던져놨기에, 일상의 마주함조차 그 느낌표 속에 녹게 만드는 사람. 그랬다. 만남, 그것은 이미 완성된 창조인지도 모른다. 죽음과의 직면이 새 삶을 창조하는 시작이었듯이.


암 의 발 병 이 새 로 운 삶 을
발 견 하 다

그녀는 원래 어린이 책을 연구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는 독서운동가였다. 1990년부터 이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하다 사무총장까지 지냈다. 그렇게 8년째 되던 어느 날,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한 눈 팔지 않고 주어진 길을 열심히 온 것뿐인데, 발병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구나 그녀 주변엔 암에 걸린 친척도 없었다고. “검사 결과 의사 선생님이‘ 이 정도면 나쁜 거죠.’ 하는데,‘ 나쁜 게 뭐에요?’ 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나쁜 건 암이죠.’하시더군요. 그때부터 눈물이 줄줄 나왔어요.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나 할 정도로.” 물에 푹 젖은 스펀지가 제 무게가 무거워 자기를 비우듯, 그녀는 눈물과 함께 자신의 온 존재를 쏟아냈다.

내 속의 눈물을, 내 몸의 아우성을 발견해서였을까. 그때부터 그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희망과 자유로움의 상징인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 규모와 청정함에 압도당한 뒤, 더 내려놓고 비우고 싶은 마음에 그 담엔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비우면 채워지기 마련이라 했던가, 이때 눈물을 양껏 쏟아낸 그녀의 눈은 히말라야를 가득 담는다. 결국 2004년, 암 수술을 받은 몸으로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한다. 눈물의 발견은 곧 마음의 건강한 발버둥으로 이어졌고, 이내 두 다리의 발돋움이 되었던 셈.

“사막에서 동료들과 같이 걷다가 홀로 떨어지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가 정말 생명수 같은 시간이죠.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이지만, 또 반대로 가장 편안하고 묘한 기쁨이 올라와요. 사막의 황량함, 그게 바로신 자체인지도 몰라요.”


내 가 산 을 오 르 는 이 유

히말라야 등반을 계기로 전문적인 등반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곽정란 씨. 이후 등반학교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2005년 한라산, 2007년 일본 북알프스 시로우마다께 설상 등반에 성공, 2008년에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에 이른다. 50도가 넘는 사막 한가운데를 6박 7일 동안 달린 끝에 사십대 여성 1위로 완주했다고.
“사실 전 되게 소심하거든요. 대회 한번 참가하기 위해 얼마나 두려워하는데요. 사람들은 모르죠. 그 간극이 있어요. 남이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극에서 살아요. 하고 싶으니깐요!” ‘반드시 완주하고, 무조건 발을 내디디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는 각오의 앞 글자를 따 ‘반,무,절’을 구호처럼 외쳐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라는 그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반복되어 입술에 붙을 때, 우리는 바람을 이루기 이전에 두려움과 직면해야 하는 단계를 거친다. 두려운 떨림이지만 이는 곧 스스로를 살리는 힘이 된다. 이 힘은 나를 이끈다. 끌림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젠지 아세요? 내가 바라던, 생각했던 곳에 내가 가 있을 때에요. 그곳, 그 지점에.” 영혼이 바라는 것을 온 몸이 실천해낼 때, 생의 진짜 행복이 시작됨을 맛 본 그녀. 요즘도 늘 하루의 반은 책과 함께하며 영혼을 살찌우고, 나머지 반은 몸을 움직이는 일과들로 채워가고 있단다. 외부와 내부의 시선 사이에서, 몸과 마음의 틈새에서, 그녀는 기꺼이 가슴 뛰는 행복을 키워낸다.


가 장 외 롭 고 고 독 한 순 간 , 신 을 만 나 다
삶의 변화는 신앙의 변화, 그 깊이와 직결된다. 발병 이후, 그녀도 신을 만나는 모습이 더욱 다양해졌다고 고백한다. 마치 암벽을 타다 발견한 바위틈의 꽃 한 송이가 기쁨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그분을 느낀다. 사막 완주처럼 힘든 도전일 경우, 그건 절대 자신이 해낸 일이 아니었다고.
“사막에서 동료들과 같이 걷다가 홀로 떨어지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가 정말 생명수 같은 시간이죠. 가장 외롭고 고독한 순간이지만, 또 반대로 가장 편안하고 묘한 기쁨이 올라와요. 사막의 황량함, 그게 바로 신자체인지도 몰라요.”
홀로 걷는 길, 너무 외로워 자신의 발자국을 보려 뒤로 걸어낸다는 사막. 그 지독한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는, 그저 존재 자체의 충만함 일게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하늘, 물기하나 없는 건조한 땅. 그 모든 것들과 정직하게 직면할 때 비로소 차오르는 온전함이, 저기 저 밑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는 기쁨이 되듯 말이다. 최근에 참가한 마라톤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아주 가파른 고개를 보니, 외려 힘이 나더란다. "고개를 다 넘고 뒤를 한번 돌아봤어요.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온 몸을 감싸는데‘ 아, 이게 신의 목소리구나. 신의 음성이구나.’ 싶더군요.” 돌아보면, 때론 사막이고 때론 고갯길 이었던 우리네 삶. 그럼에도 고스란히 감사의 고백만이 남는 순간이 있다. 사라지는 것도, 살아지는 것도 아닌, 살아있음이다. 사막의 한 가운데서, 고개의 정상에서.


숨 은 꽃 , 꽃 술 을 터 뜨 리 다

최근 나온 그녀의 책 <숨은 꽃, 꽃술을 터뜨리다>를 보면, 딸에게 쓰는 편지가 나온다.‘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글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시간 개념을 공개한다. 바로‘ 시간을 재지 않는 삶’. 아직은 민감한 여고생인 딸에게 그녀의 발병이 더 이상 집안의 우환이 아닌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다. “앞으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서 열리는 마라톤에도 참가할 계획이에요. 이곳저곳
아픈 데가 많아 의사 선생님이 가지 말라시는데,‘ 그럼, 한 6시간 걸어서 들어오지 뭐.’ 했어요. 기록은, 중요하지 않아요. 전 마라톤 뛰면서 사진도 찍고, 폼도 잡아주기 위해 왔던 길을 거꾸로 가기도 하는 걸요.”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각기 다른 테마로 가르침을 전해 받는다는 그녀. 히말라야가‘ 자연과의 합일’이었다면 최근 참가한 베를린 장애인 마라톤에선 외려‘ 물질문명의 아름다움’ 즉‘ 사람이 주는 기쁨’을 보았단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한 것도 아름다워요. 예전엔 컨테이너 박스가 그냥 그렇게 싫었어요. 그런데 이젠
그거 자체로 봐지더군요. 보도블럭 하나도 자세히 보세요. 다 다르게 생겼다구요.” 그녀는 시간을 만들어 낼 줄 알기에, 시간을 잴 필요가 없는 듯 했다. 10년 동안 옷 한 벌 안사고, 돈을 아껴 등반가로, 마라토너로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녀의 시간은 비싸다. 싸구려 시간이걸랑, 먼저 가도 좋다. 시간을 뛰어 넘는 시간이 그녀와 함께 하므로.

“어라,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기자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시간을 재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을 만났기에, 내 시간도 흉내를 냈나보다. 기분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그 여운에 싸여 돌아오는 길. 걸음을 세다가, 문득 더욱 느려진 내 속도를 발견한다. 이 호흡을 더욱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또 한 번 흉내를 내본다. 그녀의‘ 반.무.절’ 에 힌트를 얻어서‘. 반대인 것들을 품으며, 무모한 것들에 웃음 지으며, 절실한 것들을 응원하며 간다.’ 그래, 만남은 그 순간 이미 창조다. 이제, 다시 재촉한 걸음에 가벼운 무게를 실어 발자국을 남긴다. 여기, 사막 같은 세상 위에, 매 순간이 고갯길의 정상임을 기억하며.


글ㆍ사진 신정은



숨은 꽃, 꽃술을 터뜨리다 
곽정란 | 젠북


지극히 평범하고 소심했던 그녀에게 어느 날 소리 없이 다가온
‘암’이라는 인생의 고비. 하지만 주저앉지 않고 당당히 맞서 새로
운 세계를 아주 긍정적으로 맞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히 써내려간
책이다. 병 삶이란 굽이굽이 고비를 넘어온 시간들을 압축한 한 글자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순간, 마지막 글귀가 또렷한 여운으로 들린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젠 혼자 달리
지 않는다. 당신과 함께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