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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5-06 고달픈 삶, 희망의 인문학

고단한 삶, 희망의 인문학 6 l 길 가에 내버려졌던 삶에 희망이 피어나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임영인 신부


프란시스 성인의 정신을 배우자는 뜻으로 붙여진 ‘성프란시스 인문학과정’.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의 삶을 추구하고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나누고자 노숙인들에게 인문학강좌를 열어 온지 벌써 4년째. 한국의 ‘ 클레멘트 코스’라 불리며 소외계층을 향한 인문학 공부의 물꼬를 터온 성프란시스 대학은 노동자들이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왔던 임영인 신부가 큰 깨달음을 얻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돈보다는 자존감이다
“오래전부터 빈곤계층을 만나오면서 알게 된 건, 이들의 즉 자적 필요와 권리를 채워준다고 이들의 삶이 행복해지지는않더라는 거였어요. 빈민지역 자활사업을 하면서 오히려 더 한계를 많이 느꼈죠.” 경제적, 제도적 개선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자기 삶을 찾아가는 방식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를 알게 되었고, 무릎을 탁 쳤더랬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매우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존감인데,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이고 다른
사람과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이 힘이 인문학 공부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거다 싶었죠.” 임영인 신부는 그 길로, 인문학 강좌에 관한 커리큘럼과 매뉴얼 등을 공부하며 ‘노숙인다시서기센터’ 실무스텝들에게 이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물론 이상한 사람 취급도 당했지만 책과 비디오, 토론과 특강 등을 통해 꾸준히 설득한 지 6개월 만에 인문학과정을 열 수 있었다고. 삼성 코닝에서 재정적 후원을 맡아주었고, 여러 교수
님들이 함께 뜻을 모은 결과다. 1년 2학기제로서 철학, 예술사, 문학, 역사, 작문 등 6과목 15강의 강좌를 기본으로 하며, 미술관이나 공연, 영화 등을 관람하는 문화체험, 어려운이웃을 몸으로 돕는 자원봉사, 고궁이나 박물관 등에서 이루어지는 현장학습, 그리고 진한 1박 2일 MT까지 다양하고 알찬 배움과 나눔이 꽉 차 있다.

노숙인에게, 왜, 인문학인가
거리로 나가 노숙인들을 만나 인문학 공부를 하자고 해야 겨우 학생을 모을 수 있었던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20여 명 입학 정원에 60여 명이 찾아와서 면접을 거쳐 학생을 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선생님들이(노숙인들을 호칭하는 말) 이곳에 왜 올까요? 밥이 나와요, 떡이 나와요? 똑같은 성장을 해도 풍요롭게 하고 싶은 욕망이 인간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에요. 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에요.” 깨달음을 향한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왜 쉽게 대하냐며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사람의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 봐야지, 오로지 경제적인 문제로 보면 안 되잖아요.” 30%가 고아원 출신, 60%가 폭력 가정 출신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평균 나이 50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 이전에 이미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이 지금 우리 사회 노숙인의 현실이다. “이런 분들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자기 모습으로 읽어내요. 이건 혁명인 겁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까. “이 분들은 스펀지 같아요. 외연적인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아도 잔뜩 물을 빨아들여 머금고 있는 스펀지요.”
머뭇거리며 공부를 시작한 그들은 먼저 외부와의 단절을 상징했던 모자를 벗고, 옷차림이 깔끔해진다. 자신들을 ‘선생님’으로 존칭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투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스티그마’(오명, 치욕,흉터, 낙인) 같은 개념이 나올 때는 자신의 상처 안으로 들어가 토론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요즘 대학생들은 질문 없이 정답만 이야기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몸으로, 가슴으로, 삶으로 하거든요.” 그들이야말로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다.

가수 이지상의 특강  l  김동훈 교수의 예술사 강의  l  도종환 시인의 강의



교회와 인문학, 그 사이에
“사실은 교회가 우리 사회 신앙인들에게 대사회적으로 리더십을 잃어버렸어요. 왜 그랬는지 질문해봐야 합니다. 소통의 구조가 일방통행이기 때문이에요. 그저 내 방식대로 선행을 베푼 거죠.” 그러면서 오래된 전래이야기 ‘여우와 두루미’를 꺼낸다. 여우는 두루미에게 접시에 스프를 담아 주었고, 두루미는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여우에게 주었다는 이야기 속에서 한국기독교가 누구를 위해 진정 베풀어 왔는지 묻는다. “내가 참 소중한 존재이구나, 깨닫게 하는 것이 신앙 아닐까요? 내 식대로 베풀면 대접 받는 사람은 소중함은커녕, 무시당한 느낌만 들죠.” 언제부터 교회가 리더십을 잃어 온 걸까? “저는 교회가 바로 인문학과 멀어졌을 때부터라고 생각합니
다. 중세시대에는 자기 고민 속에서 인문학이 부흥했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죠. 하지만 그 이후 교회가 도그마와 교세확장에만 붙잡히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온 것 아닐까 생각해요.”
그는 교회가 노숙자들을 위한다고 하는 행위가 얼마나 일방적인지 답답하다. “전도나 선교라는 게 결국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거 아닌가요? 그럼 상대에 맞는 방법으로 다가가야죠. 호환되지 않는 용어로 다가가는 것은 오히려 퇴행을 불러일으킵니다. 교회가 노숙자 선교한다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씌어 있는 똑같은 티셔츠를 나눠주고 가요. 그 티셔츠 입으면 노숙인이라는 걸 드러내는 딱지 인데 누가 그걸 입겠어요. 더군다나 ‘예수 안 믿어서 노숙인된 거다’라는 말까지 해요. 참….” 밥 나눠주고 예수 믿어라 설교하는 건 밥과 예수를 교환하고 거래하는 것 같아 오히려 참혹하다는 임영인 신부는 그들에게 기도해라, 교회 다니자, 신앙을 가져라 등의 ‘전도성 발언’을 전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문학이라는 게 신 앞에 선 인간을 연구하는 것이고, 신학 또한 신을 믿는 인간의 고백과 성찰을 묻는 것이니, 전혀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신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요.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사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노숙인을 비롯한 소외 계층에게 인문학의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화를 기대한다는 임영인 신부. “우리는 ‘아는 사람만 손들어!’ 의 풍토에서 자라왔지만, 알았으면 남을 줘야지, 저만 알면 뭐하냐구요. 대학에서 교양강좌를 일반 시민들에게 열어, 노숙인들도 그런 기회를 나눌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노숙인이 풍요로워지면 세상이 다 풍요로워진 것 아니겠어요?”

어떠한 의미로든지 지금의 위기는 참으로 절망적이라고 하자, 그가 경쾌하게 한 마디 한다. “갈 때까지 가보면 괜찮아질 거에요.” 죽음과 부활이 하나이듯, 절망과 희망도 결국, 하나 일테니. 길가에 내버려졌던 절망의 삶에서 피어난 희망이 그래서 고귀하듯이. ‘이제는 꿋꿋하게 살아갈 것이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졸업생이 남긴 문집의 글귀 하나가 다시 살아가라 말한다. 글ㆍ사진
노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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