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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5-06 고달픈 삶, 희망의 인문학

고단한 삶, 희망의 인문학 8 ㅣ 교회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청어람아카데미
공부라면 대학입시생과 취업준비생이 하는 것이 전부인 시대, 그런 공부 때문이라면 교회에 소홀해도 특별한 면죄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회에서 하는 공부의 전부인 비슷비슷한 성경공부는 복잡할수록 허망한 현대인의 삶에 채 공감하지 못하고, 같이 흔들려주지도 못하는 괴리의 현실을 쓸쓸히 지나간다. 결핍의 갈증이 서서히 차오를 즈음, 교회 안에서 ‘다른’ 공부를 기획하고, 교회 밖의 ‘새로운’ 텍스트를 읽어내며, 삶의 뿌리 깊은 질문과 맥락, 그리고 감성을 발견하는 곳이 있다. 남산과 맞닿아있는, 유독 젊은이들이 많은 길목 사이에 자리 잡은 청어람아카데미. 매일 저녁 이곳에서 생산되는 지적 열정과 소통의 쾌감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양희송 실장

교회가 만든 공간에서 교회에 결여된 부분을 채우다
청어람아카데미는 높은뜻숭의교회가 지난 2004년 만든 교육관의 공간을, 주중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모색하며 시작된 기독교 지성의 배움터이다. 공간을 열어놓되,공익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우자는 뜻이 모아져, 이듬 해 봄부터 기독교모임과 시민강좌를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회에서 보통 하는 성경공부나 신앙강좌 같은 것은 열지 말자고 했어요. 한국 기독교 전체를 보았을 때 비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이곳에서 채워지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청어람아카데미 양희송 실장은 먼저 정치나 문예영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다루는 기독교적 사회관이 왜곡되어 있거나 편협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돌아가지 말고 바로 현안으로 가서 현실에 직면하여 가치관과 사회관을 되짚어가면 좋겠다고요.” 때로 교회에서 ‘정치’를 말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한 상황, 한반도 평화,통일, 대선, 총선 등의 문제의 현안에 가까이 다가갔던 것은그 때문이었다. 이후 청어람은 철학과 인문학 강의를 만들면서 ‘강영안’이라는 굵직한 강사를 발견해냈다.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이라는 5주 기획 강좌를 열었는데, 잘 모르는 철학자의 사상을, 잘 알려지지 않은 강사가, 이제 막 시작한 청어람에서, 그것도 기독교 청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기획이었다. 하지만 유료로 50여 명이 등록하여 수강하는 뜻밖의 쾌거를 이뤘고, 좋은 기획의 강좌에는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교회가 외면하려는 질문에 다가가
“강사 중에는 청어람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 개신교 대중들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이런 소통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요?” 청어람은 이렇게 교회라는 딱딱한 토양 위에서 교회가 그동안 전혀 다뤄보지 못한 인문학의 나무를 심으며, 기독교의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묵묵히 세상과 소통하는 길을 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교회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사실. 양희송 실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기독교계에 생기는 ‘아카데미’들을 보며, 이는 확연하게 ‘운동’ 모드에서‘ 성찰’ 모드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갈 방향과 내용은 정해져 있으니, 얼마나 열심히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그 방향이나 내용이 과연 올바른가’를 묻는 상황인 거죠. 헌데 이런 질문을 교회 안에서는 위험하다거나, 거북해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나 외면하거나 회피한다고 질문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 괜히 머리만 커진다는 식으로 백안시하지 말고, 적극 수용하고 유익을 누리는 방향으로 맞이하면 좋겠단
다. 여기에 교회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과거의 무신론자는 ‘신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묻고 따지면 그들은 방어하며 듣는 편이었죠. 그러나 오늘의 무신론자는 ‘무신론적 신념으로 무장된 사람’입니다. 변증의 공수가 바뀌어서 그들이 묻고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입장이에요. 대답할 내용을 온유와 두려움, 혹은 존중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시대죠. 공부 안할 도리가 없습니다.”

기독교 틀을 벗어난 유연한 대화가 필요한 때
청어람은 이번 봄학기도 다양한 강좌로 풍성하다. ‘십계명의귀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라는 강영안 교수의 강의를 비롯한 신학-인문학 강좌와 ‘포스트-민주주의’에 관한 정치 강좌, ‘소통과 만남을 위한 기독교 문화관’의 문예강좌, ‘신약과 구약이 입 맞출 때’라는 성경해석에 관한 강좌 등이 진행되고 있다. 그밖에도 ‘작가를 알면 영화가 보인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림읽기의 즐거움’, ‘화풍난양:한낮의 문화강좌’, ‘숨어있는 소리를 음악의 대양에서 만나다’, ‘영화 해석공동체 만들기’ 등 제목만 들어도 재미와 의미가 넘치는 다채로운 강좌가 그득하다. 때때로 수강료 5천 원이면 들을 수 있는 ‘공개강좌’는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끼와 열정으로 삶을 창조해내는 이들을 모셔 진솔한 나눔의 향연을 펼친다.
지난 3월에는 사진작가 신미식 씨와 부산 인디고서원 허아람씨가 공개강좌의 주인공이었다고.
3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청어람이 이만큼 자리를 잘 잡아온 것은 이러한 앎의 욕구를 가지고 자기 성찰적 힘을 온 몸으로 필요로 하는 이들이 한국교회 안에도 많다는 현실 인식이 있었기 때문. “기독교성은 주제를 이미 협소하게 만들어 버릴 만큼 큰 틀을 가지고 있어요. 그 틀을 벗어나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조근조근 대화하며 새로운 통찰을 던져 주는게 필요합니다. 교회가 이러한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이러한 배움과 소통을 바탕으로 청어람은 또 다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청어람을 거쳐간 수강생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차원의 실천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른 바, ‘Action Group 101 Project’. 정치아카데미수강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난민인권센터’가 이미 시작되었고, 이어서 ‘북한인권모임’, ‘청년웹진’ 등이 등장하고 있다. 교회와 사회 사이, 성경과 인문학 사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사이에서 왠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던 것들을 솔직하게 토해내며 정직한 지성과 예민한 감성으로 소통해온 청어람아카데미. 이제 그가 낳고 기르는 새로운 행동들은 또 어떠한 모험과 도전을 감행해낼까. 글ㆍ사진
노영신


청어람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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