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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길에게 길을 묻다

천사들의 땅, 마다가스카르



마다가스카르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5분 정도다. 그런데 난 그 2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마다가스카르라는 나라와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시내로 가는 차안에서 바라본 마다가스카르의 모습과 사람들, 낯선 이방인에게 손을 흔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내 남은 생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 바로 이곳이다’라고. 이유를 말하긴 어렵다. 난 그냥 본능적으로 이 나라가 좋아졌다. 그것은 처음 이곳을 여행한 때나 그 이후로 4번을 더 찾아간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낯 선 땅 에 서 어 린 시 절 을 만 나 다
시내로 들어서며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뭐야? 여기가 아프리카야? 무슨 아프리카가 무슨 유럽 같아? 마다가스카르에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참 많다. 아름다운 건물들이 도시를 고풍스럽게 수놓고 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너무나 멋진 이 도시에서, 이상하게 낯선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도시의 멋진 건축물들이 참 맘에 든다. 공항에서 10분 정도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길게 뚝방길이 펼쳐진다. 이른 아침이면 이 뚝방길은 빨래하러 가는 아낙네들의 긴 행렬이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를 자주 갔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머니를 쫓아 커다란 물통을 들고 가는 개구쟁이 소년에게서 어린 시절 나를 떠올렸다. 우리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땅 아프리카, 그것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난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행운을 얻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낯선 나라에 그렇게 애정을 갖는 이유가 말이다. 모든 환경이 너무 낯선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나와 같은 느낌의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가 있었다.


길 에 서 만 나 면 친 구 가 된 다
뚝방길을 지나면 자동차가 다니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그 삼거리 모퉁이에는 작은 커피숍(?)이 있는데 쌀을 갈아서 직접구운 빵과 맛난 커피를 마실 수가 있다. 처음 이곳에 방문해 우연히 들린 곳인데 마다가스카르를 갈 때면 어김없이 들려 인사를 나누는 친숙한 사이가 됐다. 주인장이신 홀어머니와 딸, 그리고 수줍음 많은 막내아들이 이제는 익숙해진 나를 반기는 곳이다. 여행자에겐 새로움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나보다. 숫기 없는 내가 겨우 몇 번의 방문으로 이들과 가족과 같은 친숙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안타나나리보는 무척 매력 있는 도시다. 비록 건물들이 오래되어서 낡고 허술해 보이지만 그 낡음이 전혀 지저분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아프리카의 흙먼지를 이곳에서 만큼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안타나나리보를 떠나 자동차로 안치라베와 미안드리바조를 거쳐 2박 3일 만에 도착한 모론다바는 어촌 마을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그 유명한 바오밥나무 거리가 있다. 흔히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를 연상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동화속의 나라가 되기에 충분하다. 세상에서 가장 특이하게 생긴 이 나무 앞에 서면 사람들은 이곳에 온 목적을 스스로 깨우쳐 간다. 그리곤 동화 속의 어린왕자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겠다. “와! 저게 그 바오밥 나무야?” 라고. 사람이 행복해지는 순간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이처럼 특별한 경험이 또 있을까?

마 다 가 스 카 르 여 행 필 수 품 , 미 소
마다가스카르는 어쩌면 심심한 나라일지 모른다. 유명한 관광지나 눈이 뒤집힐 정도로 희한한 것을 보여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접근해 같이 즐길 수 있는 여행자라면 이곳은 분명 천국이다. 왜? 천사들이 그곳에 살고 있으니까. 그 천사들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마음이다. 나는 이 나라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이 나라를 여행했고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이곳을 그리워하며 떠나야 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강하게 끌어당겼을까? 난 그 이유들을 정리하면서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렸다. 특히 여행길에서 만난 그저 마주친 것이 아닌, 어깨를 나누고 눈빛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교환한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까만 얼굴 사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 놓고 환하게 미소 짓는 사랑스런 모습이 그리웠던 것 같다. 자지러지듯 뱉어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나를 행복하게 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했다. 어느 곳에서나 아이들은 나의 존재를 호기심으로 받아들였고 곧바로 친숙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내가 이들에게 준 것은 겨우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는데도 이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소리를 나에게 선물했다. 만약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당신에게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올 테니까.


신미식|디자인을 전공한 후 15년 가까이 그 분야에서 일해 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17년 동안 사진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사진으로 담아 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여전히 여행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독한 방랑벽을 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