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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그래도 엄마가 있다


출처 : MBC홈페이지


2006년 첫 선을 보여 호평을 받은 이래 매년 ‘사랑’에 관한 네다섯 편의 에피소드를 제작해온 MBC <휴먼다큐 사랑>이 올해는 특히 ‘어머니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다섯 편을 방송해 큰 반향을 불러왔다. 한다하는 연예프로그램들을 물리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는가 하면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 이들조차 TV 앞에 모여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으니 세간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열두 해라는 짧은 삶 속에 파양을세 번씩이나 당한 지원이를 입양한 연기자 송옥숙 씨의 얘기를 담은 ‘네 번째 엄마’, 어쩌면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야할지도 모르는 위암 환자 최정미 씨의 ‘풀빵엄마’,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세진이를 입양해 수영선수로 키워낸 양정숙 씨의 ‘로봇다리 세진이’,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딸 재희를 어떻게든 붙잡고자 애쓰는 정자경 씨의 ‘우리가 사랑할 시간’, 그리고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고 아이를 낳느라 목숨까지 건 윤선아 씨의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까지, 서로 다른 다섯 어머니의 지극한 모성애를 보고 있자면 ‘신이 모두를 지켜줄 수 없어서 주신 선
물이 어머니’라는 말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들을 보며 눈물을 쏟고 있자니 한편으로 ‘나는 과연?’이란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남의 아이를 데려다 내 아이에 버금가게 사랑을 줄 수 있을는지, 내 아이들을 위해 힘든 항암치료를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잘 버텨낼 수 있을는지, 또한 의료진들도 포기한 아이를 놓치지 않고자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을는지 등등,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처럼 잘 해낼 자신이 없으니 이를 어쩌누. 물론 나도 내 아이들 앞에선 “엄마는 늬들 위해서 못할 게 없어!”라고 늘 큰소리를 치는 엄마다. 한참 대학입시로 인해 전전긍긍하던 시절엔 농담 삼아 우리아이를 원하는 대학에 넣어주기만 한다면 평생토록 그 학교 청소부 일이라도 기꺼이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적도 있으니까. 솔직히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인들 아까우랴. 각막인들 신장인들, 더 나아가 목숨인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에 아까울 게 있겠나. 하지만 실제 상황일 때, 그리고 잠시잠깐이 아닌 오랜 세월 인내와 희생이 필요할 때 과연 내가 한결 같은 마음으로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그게 의심스럽다는 얘기다. 긴 세월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지만 기나긴 시간 동안 변치
않는 모성애 또한 어디 쉽겠나.
그러나 위암 말기 환자 은서 어머니의 ‘풀빵엄마’ 편을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희망이란 생각이 든다. 다른 아이들은 역경과 고난 속에 있긴 해도, 그리고 재희의 경우 끝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그 아이들 곁에는 몸과 마음을 바쳐 돌봐주는 엄마들이 있지 않나. 반면 고작 일곱 살인 은서가 엄마를 잃고 이험한 세상을 살아갈 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온다. 세상에서 제일 딱한 이가 어린 나이에 엄마 잃은 이라 하거늘, 방패막 하나 없는 은서는 어찌 살아가나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은서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부디 은서 어머니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하시라고. 문득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누군가 간절히 원하던 내일이었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 당장 우리 어머니께 전화라도 한통 넣어야 되겠다.

정석희|TV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대표 주부이자 <우먼센스>, <좋은생각>, <10아시아>등의 매체에 글을 쓰는 방송 칼럼니스트. 아줌마의 눈높이로 본 TV 속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재치 있는 입담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재미나게 풀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