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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아름다운 당신의 오늘

숲이 가르쳐 준 삶의 혁명 ㅣ 숲 해설가 김용규









우연이었을까. 문득 이미 봤던 시집을 꺼내 읽고, 베끼는 오랜 습관이 몰려왔다. 그즈음 눈에 밟히던 글귀는 문태준 시인
의 ‘맨발’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길은, 사랑할 채비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 길 내는 법이 없다. 유혹 당하는 마음조차 용서하고 보살펴야 이곳, 온전히 통과할 수 있다. 그래야 이 긴 어둠, 어둠 아니다” 
그렇게, ‘길’로 비유되는 실존 자체에 대한 지난한 화두가 다시 온 몸을 감쌀 때 즈음,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을 만났다. 도시의 삶과 CEO라는 명함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간 저자 김용규 씨의 인생 경영 철학서. 그의 책을 덮으며 비로소 알았다. 모든 길은 맨발로 서라 요구한다는 것을. 그렇게 '신'을 벗어야만 ‘신’을 만난다는 것을.  


양복 입은 성실한 독종 , 꿈이 뭐였지 ?
백사실 숲에서 숲 해설가로 독자들 앞에 선 김용규 씨는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제가 좀 변태스러운 데가 있어서 나무를 볼 땐, 이렇게 꼭 끌어안고 봅니다. 밑에서 보면 나무는 서로를 위해 자신의 가지를 떨궈 준다는 걸 알 수 있죠.” 넘치는 위트와 깊이 있는 삶의 지혜가 있는 그의 숲 해설은 마치 한 편의 설교와 같아 자꾸만 즐거운 ‘아멘’이 나오게 했다. 경계에서 자라는 나무에 대한 찬사, 가지가 꺾이고도 살아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나무, 새에게 보금자리를 내어 준 나무까지, 그의 눈과 귀는 정말 숲과 소통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책에서 자신을 국내 굵직한 대기업에서 일하다 벤처 기업 CEO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고 짤막하게 자기를 소개한 채, 온통 숲을 이야기했다. 지금의 자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깔끔한 머리와 양복의 차림으로 열심히 일했던 시절, 유학을 위해 사표를 던지자 수리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IMF가 터지며 책임져야 할 가족을 외면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결국 마침 일던 벤처붐을 등에 업고, CEO 자리에 앉게 된다. 집까지 다 처분하고 떠날 채비를 했던 마당에,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고. “어느 날, 잡지 인터뷰를 하는데 기자가 묻더군요. 꿈이 뭐냐고. 그런데 멍했어요. CEO로서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그 뻔한 대답을 하면 되는데도,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진정 내 삶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묻기 시작했죠. 그때부터였어요, 숲을 다니기 시작한 게. 그 기자가 메신저였던 것 같아요, 제게는.”



나를 찾기 위해 만났던 숲
스스로를 성실한 독종이라고 단언할 만큼 확신에 찼던 삶. 그 길 위에서 맞닥뜨리는 삶이 주는 짓궂은 빗나감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어서였을까. 숲은 그를 품어주기 시작했다. “ 자아를 찾아 숲을 다니기 시작했죠. 바위 위의 소나무, 돌 틈의 풀 한포기를 보면서 왜 삶은 척박한 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나가는 걸까 생각하고, 궁금해서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시작한 일이, 숲 생태 전문가, 행복숲 공동체 대표, 농부, 라는 넘치는 명함을 갖게 했다.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숲으로 들어가 ‘행복숲’이라 이름 짓고,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 것. 숲에 들어가기 위해 6개월간이나 숲을 찾아가 물어봤단다. ‘내가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어느 순간, 숲으로부터 대답을 들었다는 그는 지금의 삶에 더없이 만족해 보였다. 무엇보다 예전 도시의 바쁜 삶에 쫓길 때, “아빠, 오늘은 집에 일찍 놀러 와야 해요.” 했던 딸아이가 지금은 아주 행복해한다고.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예의를 갖추기까지 한 그에게, 숲은 길을 내주었다. 사랑할 채비, 그것이 사랑의 길을 걸어 나가는 전부임을 숲이 가르쳐 준 셈이다. 아이의 영혼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희망, 자기다운 욕망을 간직하는 것
그는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에서 공부했다. 꿈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고민 끝에 꿈 없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물어봤단다. 그 전엔 누군지도 모르던 사람과의 각별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고. 자기 고민, 자기 사랑의 확장은 늘 이렇게 만남을 낳고 그 사이 ‘사건’을 만들어 내기 일쑤다. 책을 낸 계기도 그러했다. 삶을 바꾼 이야기를 알리자는 스승님의 이야기에 일언지하 거절한 게 재작년이었다고. “그 이후 마음에 고이더군요, 자꾸. 7개 출판사가 모인 곳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어요. 계약하자는 큰 출판사도 많았는데, 일부러 작은 출판사를 선택했어요. 열정을 가진 마이너리티들이 신화를 만드는 걸 보고 싶었거든요.” '마이너리티들의 신화'라는 표현을 듣자 순간, 정말 자기다움대로 나가는 그 저력에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희망이었을 게다. 희망은 그렇게 정지화면으로 불쑥 들어오니까. 그러고 보니 희망이란, ‘정말 자기다운 욕망을 간직하는 것’이란 그만의 정의가 딱 맞아 떨어진다. 최근에는 마을 어르신들에게 지지를 얻는 사건도 있었다. 마을 개발 차원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는데, 이에 앞서 컨설팅 업체에서 그에게 강연 요청을 한 것.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짓고 부수고 할 것이 아니라, 큰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사람과 마을의 원형을 되찾아 가자는 그의 강연에 많은 마을 어르신들이 박수를 보내셨다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건 책 한 권, 나무 한그루의 힘이에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힘. 멀쩡한 나무를 베어버리는 게 아니거든요. 발상의 전환이죠.”
그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후회는 안하리라 했다. 햇살이 눈으로 쏟아지면 일어나고, 일하다 해가 지면 책을 보다 잠이 드는 일상에 그저 젖어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어김없이 ‘행복하다’라는 고백이 뒤를 이었다. 그의 ‘행복숲’엔 바위를 껴안고 자라는 느티나무가 있다고 한다. 침엽수와 다르게 활엽수는 바위를 뚫고 씨를 터트리는 힘이 없는데, 생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의 숙명을 온몸으로 껴안은 그 나무를 참 좋아한다고. 그 모양새를 떠올리니, 어쩐지 <어린왕자>에 지구를 껴안은 바오밥 나무가 연상됐다. ‘행복숲’. 그의 세상은 나무들이 둥글게 말아 안아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뿌리의 저력이 감싸주는 그의 세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향기로운 혁명에 취해 신을 벗어본다. 맨발이다. 비로소 이 긴 어둠, 어둠 아니다.

신정은 | 사진 노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