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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TV 상자 펼치기 3 | ‘우리 결혼했어요’의 놀이 같은 결혼

요즘 <일밤>의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가 장안에 화제다. ‘우결’은 연예인으로 이루어진 4쌍의 가상 커플이 등장하여 각각의 결혼 생활을 공개하는 ‘페이크(가짜로 연출한 다큐)’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결혼이라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연예인들이 짝을 이루는 설정은 한때 유행했던 포맷인데,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 KBS <산장미팅-장미의 전쟁>, SBS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우결’은 게임을 통해 계속 커플을 바꾸지 않으며, 또 프로그램 종료 시에 과연 커플이 탄생할 것인지 변죽을 울리지도 않는다. 이전 사례처럼 더 이상 커플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는 데 제작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출연자들이 ‘진짜 부부’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 프로그램들이 <사랑의 스튜디오>의 연예인 버전이었다면, ‘우결’은 <인간극장>의 연예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이길 바래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결’이 꽤 중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수의 ‘우결’ 시청자들이 몰입시청의 경험이 있다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은 드라마와 달라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용에 ‘몰입(immersion)’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결’은 예능물이면서도 드라마의 미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인기비결이자 시청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TV 드라마가 ‘허구와 현실’, ‘일상과 비일상’, ‘사실과 상상’을 동격에 놓고 끊임없이 충돌시키고 대립시키면서 양자 간의 긴장관계를 통해 생산되듯, ‘우결’에서도 이러한 접근방식이 발견된다. 중요한 것은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한계상, 드라마에 비해 서사구조가 완벽할 수는 없는 데도 시청자는 자발적으로 그 허술함을 메우면서 ‘우결’을 즐기고 있다는 것. 분명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 커플들은 정말로 결혼한 것이 아니고, 또 중간 중간 인터뷰를 통해서 프로그램이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는 점을 고의적으로 드러내지만 웬일인지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정말로 부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고수하려 든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동안 일부 허구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이를 의도적으로 묵인하거나 혹은 방조하는 상태를 ‘불신의 정지(suspension of disbelieve)’라고 하는데, ‘우결’ 시청자들에게서도 이러한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결혼의 본질을 놓치다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도가 커질수록 시청자들의 텍스트에 대한 비판의식은 감소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우결’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 진지한 결혼 생활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평생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결’에 출연하는 연예인 커플들은 부부라기보다는 그저 같이 사는 커플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연애를 목적으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우결’을 시청하는 미혼 남녀들의 경우, 결혼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단지 한 공간 내에서 함께 지내며 지속적으로 연애하는 것이 결혼의 전부인 양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벤트를 잘해주는 남성이 좋은 남편감이고, 솔직 당당한 여성이 좋은 아내감이라는 획일화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우결’은 결혼의 지극히 작은 한 부분만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건전한 결혼관을 왜곡시킬 위험성이 많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더 이상 ‘우리 동거했어요’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웅진|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선임연구원과 문화선교연구원 전문위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미디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