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추수감사절? 추석감사절?

"어, 웬 떡이에요? 맛있겠다."

"추수감사절이라고 교회에서 떡을 나눠줬어."

"그래요? 아직 10월인데 추수감사절로 지켜요? 하긴 저희 교회는 11월 첫째주일이 추수감사절이에요."

주일예배를 마치고 후배들과의 약속이 있어서 시내를 나갔다. 출출할 거 같아 교회에서 나눠준 떡을 가져갔는데, 몇몇 후배들이 아직 10월인데 추수감사절이냐며 의아해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교회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시기가 조금씩 다른 게 아닌가. 추석 즈음에 지키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10월이나 11월 초를 감사절로 정한 교회들도 있었다. 오히려 관례대로 11월 셋째주일을 지키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아 대략 절반 정도 되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추수감사절’에 맞춰졌다. 누군가 예전에 비해 감사절을 보내는 감흥이 덜하다고 말하자, 아마 도시화로 인해서 그런 게 아니겠냐는 대답이 나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다보니 추수감사에 대한 공감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었다. 또 누군가는 미국의 명절을 우리의 전통과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입하여 지키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즘 추수감사절은 교회 공동체가 진정으로 1년의 수확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는 날이라기보다는, 의례적으로 감사헌금 드리는 절기가 되어버린 거 같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러면서 추수감사절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각자의 의견들이 오가며 때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메리카의 추수감사절
우리가 언제부터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을까? 시작은 1904년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추수감사절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1월 10일을 감사일로 선포하면서 부터였다. 이후 1914년 각 교파 선교부 회의를 통해 11월 셋째 주 수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켰지만 곧 주일로 바뀌게 되었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원래 추수감사절은 미국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이다. 물론 성경에도 추수를 감사하는 초막절이라는 절기가 나오지만,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감사절은 미국 교회의 풍습을 도입한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을 찾아온 청교도들, 이들이 영국의 박해를 피해 1620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을 때 극심한 겨울 추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그 중에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이들이 이듬해 가을 곡식을 수확하고 인디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감사 찬송을 드렸다.1주일간 계속됐던 이 행사를 기려 1864년에 링컨 대통령이 11월 넷째 주를 추수감사주일로 정하였다. 그 후 1939년부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변경되었다가, 1941년에 다시 넷째 주 목요일로 확정되었다. 칠면조 요리로 대표되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도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귀성 풍습이 있다. 이때가 되면 대부분의 직장들이 장기간의 휴가에 들어가고 연휴기간 중 귀성 인파만 약 3000만~3500만 명에 달한다. 학교 기숙사도 텅 비고 거리의 식당가도 문을 닫는다. 가족 중심의 삶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일로서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가족과 함께 칠면조 요리를 즐기고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히며 한 해를 마감하는 축제를 벌인다.

추수에 대한 감사, 그리고 가족
이처럼 추수를 감사하는 명절은 전 세계 각 나라에 고르게 퍼져 있다. 다만 명칭이나 시기가 조금씩 다르고 신, 조상, 자연 등 감사의 대상이 다를 뿐이다. 가까이 일본은 양력 8월 15일에 ‘오봉’이라는 추수감사 절기를 지낸다. 이때 일본도 귀성전쟁을 치르는데, 약 2000만 명 정도가 귀성길에 오른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주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1월 중순쯤에 ‘퐁갈’이라는 명절을 지킨다. 3일 동안 벌어지는 쌀과 사탕수수 수확에 대한 추수감사제이자 신년 축제이다. 러시아의 경우엔 11월 8일 직전의 토요일에 지키는 ‘성 드미트리의 날’이 있다. 이때가 되면 조상들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고, 가까운 친척들끼리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로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추석이 있다. 설날과 더불어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은 고대 농경사회에서 유래되었지만 정보화 사회에 진입해서도 여전히 그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다.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한꺼번에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귀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때가 되면 여지없이 ‘고향 앞으로’ 길을 떠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1년 중 가장 넉넉한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절기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추석이라는 명절을 놔두고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도입하여 지키기 시작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조상제사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닌 조상들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추석은 이교적 속성이 강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당시 한국교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국 선교사들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전통인 추수감사절을 도입하다보니, 우리 문화와는 연관성이 깊지 않아 감사에 대한 공감대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추수감사라는 기본 의미가 전통적인 추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반감되어 버린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추석은 여전히 명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추석에는 추수감사절에는 없는 ‘가족’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이 날 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눈다. 분주한 일상을 살면서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추석을 건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그래서 언젠가부터 민족적 공감대를 가진 추수감사절로서의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되고 있다. 특히 오랜 역사적 전통 속에 민족 고유의 감사절기로 자리 잡은 추석에 신앙적 의미 부여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로마 시대에 이교도들이 태양의 귀환을 기념했던 동지 축제가 크리스마스로 기독교화 되었듯이, 추석을 한국교회만의 추수감사절로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감사의 대상을 조상에서 하나님으로 바꾸어 일 년 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여기에 이웃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의미를 부가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절기로 보내는 것이다. 단지 가족들을 찾아 함께 보내는 추석이 아니라, 우리 민족 공동체가 더 큰 가족으로서 서로를 돌보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랑의 자리로 만들어 나가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추석 즈음을 새로운 추수감사절로 지키면서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초청하여 함께 하는 교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제 선교 100년을 훌쩍 넘긴 교회로서, 풍성한 민족적 차원의 공감대가 있는 추수감사절에 대한 보다 밀도 있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최은호|갇힌 틀을 깨고 새로움과 변화의 물결에 두둥실 떠다닐 수 있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행복하고 건강한 기독교문화를 이루어 가기를 꿈꾸며 현재 총회문화법인 사무국장으로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