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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여성으로 인한, 여성의, 여성을 위한 쉼

쉰다는 것, 그것의 기원은 하나님의 안식이다. 창조와 안식의 관계를 바탕으로 노동과 쉼의 관계가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조와 안식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있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사람을(남자를) 창조하셨지만 바로 안식에 들어가지 않으셨다. 사람이 혼자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게 보여 그에 걸맞는 짝을 만들어 놓고 부부로서 살아가게 한 뒤에야 비로소 안식을 취하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절대 필요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실존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맘을 놓게 한 셈이 된다. 그것을 감히 여성으로 인한 쉼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노동을 축복으로 주시고 또 생산의 기쁨도 함께 주셨다. 좀더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남자의 기쁨과 만족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은 여성의 존재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고 인간들은 노동과 생산을 축복으로 받게된 셈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이러한 이야기는 여성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평안과 안식은 신처럼 지혜롭기를 원하는 여성의 간절한 마음으로 인해서 깨지게 되었다. 따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여자가 따먹고 그것을 자기 남편에게도 줌으로써 그들은 인생의 반려자로서 또한 죄를 공유하게 되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성경은 이들의 범법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안식이 깨졌다는 사실을 매우 특이하게 묘사하고 있다. 즉, “서늘한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들이 듣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에 들어가신 이후 다시 말씀을 하시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간들의 죄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죄의 결과 아담은 자신의 생명을 평생의 노동을 통해서 유지해야 했고 또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범법행위를 되새겨야만 했다. 마침내 쉼을 잃게된 것이다. 하와 역시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짐을 안게 되었고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범법행위를 반성해야만 했다. 이렇게 되면 노동은 피조물에게 향한 축복이요 사명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를 되새겨보는 계기로 이해된다.

한편, 여성의 쉼을 이야기한다면 사마리아 지역의 한 여인을 생각하게 된다. 삶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목말라하며 방황했고 이로 인해서 5명의 남자를 경험해야만 했을 정도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이 여인은 평소처럼 물을 얻기 위해 우물가에 가서는 우연히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평안을 얻게되고 삶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여인의 영적인 갈증과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들의 쉼없는 노동과 분주함이 혹시 갈증을 근원적으로 해결시켜줄 수 없는 것들에 지나치게 매여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성경 이야기들은 안식으로부터 쫓겨난 삶과 또 그것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쉼을 원하기는 하지만 죄로 인해서 결코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안식보다 노동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보호하시기 위해 마침내 제 칠일이 되는 때에는 반드시 쉬라고 명령하셨다. 인간들이 쉼을 잊고 사는 것에는 인간들 스스로에 의해서는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에 적용해본다면 노동에 억눌려 지친 현대인에게 향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구원은 분명 쉼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구원은 영원한 안식으로 이해된다.

쉼,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재충전을 위해 모두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다. 노동을 소명으로 이해했을 정도로 기독교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한다. 노동을 소명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노동은 세속화되어 소명이 아니라 불필요할 정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그르치는데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가정의 파괴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향락 문화 등. 노동에 중독된 현대인들을 생각하면서 휴가철에 건전하고 유익한 쉼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특별히 여성들이 쉼을 얻는다는 것, 그것은 가정의 평화와 안식을 얻게하는데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성의 시대로 여겨지는 21세기에는 여성을 위한 쉼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또 폭넓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최성수|독일 Bonn 대학교 신학석사, 신학박사. 현, 장신대, 한남대, 한일장신대, 대신대 출강. 저서 <영화관에서 만나는 하나님>, <영화 속 장애인 이야기>, <영화 속 기독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