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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서 너무 공허한 우리의 성공신화 <슈퍼스타 K>

출처 : m.net홈페이지

가수가 되길 꿈꾸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중 재능을 확인받은 사람은 드물고,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잡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이 때 공개오디션은 순수한 재능과 열정만 가지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신화지만 또한 유혹적인 신화다. 성공과 실패가 항상 교차하는 오디션 자리는 그 자체로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드라마다. 관객들은 도전자들의 재능에 감탄하고, 그들의 눈물을 동정하며, 때론 질타한다. 호감을 가진 도전자가 상급으로 진출하면 제 일처럼 기뻐하고, 탈락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이 감정이입의 바다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가수’일까, ‘성공’일까.

긴장과 갈등의 경쟁드라마
<슈퍼스타 K>는 케이블채널 Mnet에서 주관한 가수 공개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올해 7월 말부터 방송되었던 <슈퍼스타K>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참가자들을 심사하는-혹자는 <전국노래자랑> 방식이라고 부르는-독특한 시도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매회마다 수백 명의 참가자들이 기량을 겨루고, 그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로 이효리, 이승철, 양현석을 비롯해 쟁쟁한 현직 가수들이 출연해 흥미를 돋운다. 우승자에게는 1억 원의 상금과 솔로앨범발매, 그리고 국내 유수 기획사와의 계약을 약속한 <슈퍼스타 K>는 음반계로서는 최고의 잔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최고의 잔치답게 이 기획은 면밀히 준비되었고, 시청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온갖
장치를 동원했다. 참가자 간의 경쟁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건 기본이다. 참가자들은 수차례에 걸친 오디션이 끝날 때마다 기획사 매니저들이 “지금 바로 계약하자”며 내미는 손길을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는 이유로 아쉽게 뿌리친다. 여기서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탈바꿈한다. 참가자들은 그대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고, 탈락하면 무대에서 내려온다. 이 때 탈락자들의 개인사가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슈퍼스타 K>의 제작진은 대중들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공한다는 ‘헝그리 신화’에 심취해 있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에게 맞고 살아온 과거를 가진 김현지나, 눈이 보이지 않지만 ‘심장이 없어’를 절절하게 부른 김국환 등의 캐릭터를 적절하게 활용하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또, ‘심장이 없어’나 다른 참가자들이 프로그램 안에서 부른 노래들은 그 자체로 잘 나가는 상품이 되어 음반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성공을 즐기고 난 자리
<슈퍼스타 K>는 지난 10월 9일, 서인국이 우승한 것으로 종방했다. 한편 본선TOP10에 들어갔거나 아쉽게 탈락한 사람들은 저마다 소속사와의 계약에 들어갔다. 우승하지 못했다고 해도 많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꿈을 이뤘으니 참가자들 좋고, 유능한 인재 뽑은 소속사 좋고, 눈물과 희망의 드라마를 즐긴 시청자 좋고, 여기에 프로그램 하나 잘 되어서 시청률을 양껏 올린(케이블채널 사상 최대인 7.7%) 방송국 좋은, 일석사조의 프로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렇게 시청자들은 또 한 번의 ‘성공신화’를 기꺼이 즐겼다. 그런데 신화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과,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망각뿐 아닐까. 이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바라본 것은 가수들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자신의 욕망일 게다. 그래서 시원하게 물을 타고 난 다음, 감정이입의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닌다는 건 너무 막막하고 공허한 일이다.
김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