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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저주받은 걸작, 코코어의 <Boyish>

출처 : cocore홈페이지


최근 이정재, 이선균, 윤계상 등 ‘훈남’들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MBC의 <트리플>이다. 이 드라마 1편 마지막 장면에서 아는 사람은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 코코어’라는 인디밴드의 2000년 작 <Boyish> 앨범의 노래가 배경으로 나왔던 것이다. 지상파의 2009년 화제작 속에서 ‘코코어’의 2000년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코코어’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트리플>은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출한 이윤정 PD의 작품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윤정 PD는 요즘 일반적인 드라마들처럼 구태의연한 설정을 답습하지 않고, 당대에 가장 신선한 청년문화의 숨결을 포착해내는 연출자로서 유명하다. 그런 연출자의 작품답게 <트리플>에는 대단히 ‘쿨’한 젊은이들이 등장했고, 게다가 그들이 하는 일이 광고 제작이어서 더욱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작품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2009년 트렌디 드라마에 등장한 ‘코코어’의 2000년도 노래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Boyish>의 노래는 2009년에도 충분히 트렌디하게 들렸다. 이것은 <Boyish>가 워낙 세련됐었기 때문이다. 2000년에 발표됐을 때 이미 <Boyish>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명반이라는찬사를 들었다. 그 후 약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트렌디 드라마 속에서 <Boyish>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단순히 분위기가 세련됐다,
촌스럽지 않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Boyish>는 그야말로 명곡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싱글로 커트된 ‘SunsetIn Your Eyes’와 ‘Boom Boom Kid’는 주류 히트곡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Sunset In Your Eyes’는 부드럽고 몽환적인 발라드 곡으로, 조용하면서 낭만적인 노래를 좋아하는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도 잘 맞을 노래다. ‘Boom Boom Kid’는 흥겹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독’은 마치 가시넝쿨로 짠 검은색 스웨터처럼 음울하고 부드러우며 아프다. ‘암스텔담’은 흥겨운데,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라 어두운 가운데 흥겹다. 이 노래들 이외에 지금 들어도 좋을 만한 노래들이 많다.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표현은 1990년대 초에, 잘 만들었지만 대중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영화를 가리키는 말로 유행했었다. 이 표현을 빌자면, <Boyish>야말로 저주받은 걸작이라 할 만한 앨범이었다. 명곡들로 가득 찬 명반이었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이 앨범엔 소수의 찬사만 쏟아졌을 뿐이다. 아이돌들의 노래는 발표하자마자 대뜸 1위를 만들어주는 한국의 대중들이 인디 명반에는 왜 그렇게 인색할까? 아쉬운 일이다. ‘코코어’는 2004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음악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고,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요즘도 여전히 신곡을 발표하며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현역이다. <Boyish> 앨범은 크래쉬처럼 무겁지 않고,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처럼 시종일관 달리지 않으며, 그렇다고 마냥 조용하지만은 않은, 감상성과 흥겨움이 어우러진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원하는 이라면 지금이라도 찾아서 들어볼 만하다.

하재근|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 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