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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의 슬픔

 



스스로에 대해 별로 자랑거리가 없는 나는 평소 금기의 벽을 넘어 ‘아내자랑’과 ‘자식자랑’이라는 팔불출의 양대 면모를 내심 뽐내며 산다. 그런 나의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라면 고등학교 때부터 모아온 음반들이다. 물론 전문 컬렉터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으나 Tape, CD, DVD가 합쳐서 만장정도 되니 서재가 제법 그럴 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아무 것도 볼 것 없던 초라한 열 평 원룸에 살던 신혼시절에도 집에 손님을 모시는 걸 기꺼워한 이유가 있다면 다름 아닌 음반 자랑 때문이었다. ‘웬만한 지방 방송국보다도 낫다’는 친한 PD의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했었더랬다. 음악의 분야도 그리 가리지 않는 편이라 Pop, 가요, CCM, 클래식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고르게 음반을 사모아 왔다. 락, 재즈, 힙합,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와 1900년대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를 대략이나마 읊어낼 정도는 갖추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캐롤’ 분야는 거의 광적인 매니아라 국내에서는 손꼽을 수준이 아닐까 스스로(?) 자부하고 있고, 근래에는 1950년대 팝 음악에 관심이 가서 제대로 수집을 해 볼까 하는 중이다. 다소 취약한 쪽이 있다면 음반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제 3세계 음악(월드뮤직) 쪽과 힙합(이건 진짜로 정이 많이 안 간다. 이것이 세대차이?)계열인데, 각각 100여장 수준이라 클래식 500여장과 비교해도 영 미미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10000분의 20

도대체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그리 대단치도 않은 소장음반의 규모를 길게 늘어놓고 있는 건가? 자, 지금까지는 자랑이었고 이제부터는 반성이다. 만장의 음반을 소장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국악 음반은 몇 개나 될까? 대략 찾아보니 퓨전국악앨범이 열댓 장, 정통 국악앨범은 5장정도 수준이더라. 10000분의 20은 0.002다.

0.002%. 딱 이만큼이다. 이만큼이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내가, 후진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는 내가, 음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내가,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다. 이것이 나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태도를 환산한 수치의 대변이기도 하다. 공중파, 케이블, 라디오를 무론하고 전문적으로 우리 음악을 방송하는 매체의 비율이 요정도가 아닐까. 한국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음악공연의 비율, 전공하는 학생의 비율 등. 모든 것이 딱 요만큼의 수치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낯선’ 전통음악

게다가 한국교회 안에서 전통음악의 자리는 더더욱 좁다. 특히나 이름부터가 불순한(?) 굿거리장단은 차치하고서라도 세마치장단으로 대표되는 3박자 계열의 전통음악들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악마시하는 성향마저도 종종 듣게 될 때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의 전통음악은 남의 음악인 양악에 그냥 ‘음악’이라는 자연스러운 이름마저 빼앗겨 ‘국악’이란 이름으로 유배된 채, 국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종류의 ‘음악’들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미 한 세기 이상을 휩쓸어 온 천박한 근대화, 무비판적 서구화의 물결을 이제 와서 거스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전통음악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어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생판 남의 것인 흑인음악에 목숨을 건다는 이들은 많은데, 우리의 것에 인생을 걸겠다는 이들은 눈을 씻고도 찾기가 어렵고, 사실 자라는 동안 자양분을 흡수할 만큼의 우리 음악을 섭취해 본 적도 없다. 때문에 한국적 예배음악을 음악적인 것으로만 논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아프게 깨닫는 중이다. 어설프게 국악적 느낌을 어프로치한 음악은 신파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할뿐더러 이미 시대를 공명하는 것 또한 요원하기만 하다.


한국적 예배음악을 향한 고민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에 어깨가 들썩여지던,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에 눈물을 쏟던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시대의 주연이 아니다.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음악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더 없이 좋겠으나, 이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찾는 다른 방식을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적 예배음악의 개념과 가능성의 초점을 다른 쪽으로 옮겨올 필요가 있다. 전통음악을 끝끝내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음악을 잘 모르는 나보다는, 더 전문성을 지닌 누군가가 지켜내 주기를 기도하며 비겁하게 자리를 피한다.

나는 다른 방향에서 한국적 예배음악을 모색해 보려한다. 음악과 더불어 노래의 또 다른 얼굴인 ‘가사’로부터 한국적 예배음악의 가능성을 발굴하고자 한다. 음악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더 오랜 시간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해 온 ‘말’ 이야말로 우리의 정서와 가치관을 대변해주기에 더없이 중요한 매개일 것이고, 이 ‘말’ 안에는 오랜 역사와 숨결과 리듬과 멜로디가 녹아있을 거라 믿고 있다. 어쩌면 이 ‘언어’라는 광산은 의외의 노다지를 쏟아낼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다음 호를 기약해 본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