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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추천 도서

장정일이 돌아왔다

구월의 이틀
장정일|랜덤하우스코리아


장정일의 소설은 늘 파격적이었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라는 둥, 혹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라는 둥. 그의 소설은 사회의 가장 예민한 부위들을 찌르곤 했다. 또 알고 보면 장정일은 사실 시인이기도 했다.<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고 있으면 모더니스트 시인 장정일을 발견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생태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1990년대의 장정일의 문학이라는 것은 늘 ‘충격’과 ‘짜릿함’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덕택에 그의 소설들은 영화가 되기도 했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와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또한 충격적인 영화가 되었다. ‘외설’과 ‘예술’을 넘나드는 어떤 것.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책으로 장정일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장정일의 창작이 멈추었다. 또 한 편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물로 판정받았기 때문일까. 그는 어느 순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변했다. 장정일의 <독서노트>가 나오기 시작하고 그 <독서노트>는 7권까지 계속 되었고 그것들이 정리되자 <공부>라는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어쨌거나 장정일의 소설과 시는 근 10년을 넘게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몇 달 전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과의 자리에서 장정일의 근황을 들었다. “요새 소설을 쓰고 있단다.” 뭔가가 기대되었다. 그것은 그의 감성이 다시 살아난 장정일에 대한 기대가 아니고, 어쩌면 <공부>와 <독서노트>를 통해 ‘정돈된’ 장정일이 이제 뭔가 괜찮은 거 하나를 내겠구나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구월의 이틀>은 어느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문학청년을 꿈꾸던 은은 정치인을 하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정치를 하겠다던 금은 고향으로 내려가 문학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삶의 지향을 바꿔놓은 것은 무엇일까. 은이 가지고 있는 ‘성적 취향’ 때문? 아니면 금의 ‘실연’ 때문? 이를테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데 크게 두 가지의 측면인 것 같다. 그들 주위에서 벌어진 ‘맥락’들을 살필 수가 있고, 반대로 그들 자신이 겪은 내밀하고 강렬한 ‘경험’을 보여줄 수가 있다. 장정일은 원래 ‘ 경험’의 내밀함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었으나, 이제 장정일은 ‘맥락’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숲과 나무를 같이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시인의 글은 원래 속도로 읽는 게 아니고 소설은 또한 속도감이 없이 도해하듯 읽을 수는 없는데 장정일의 <구월의 이틀>은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하룻밤 안에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문장들의 결이 떠오른다. 아, 그래서 다시 돌아왔구나. 글 양승훈


눈치 보는 한국여자
문은희|도서출판 니

어느 덧 한국사회에서 여성학이 잦아들더니, 그와 맞물려 여성은 사라지고‘ 엄마’가 남고 조금 작은 부분에 ‘아내’로서 남았다. 몇 달 전 한 여성 CEO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여대생의 질문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실 수 있으셨나요?”였다. 남학생들은 그녀가 처했던 사업상의 곤경의 타개책을 묻는다. 자꾸만 ‘가사’와 ‘육아’, 그리고 더 첨단의 ‘엄마노릇’, ‘며느리노릇’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질문도 그 안에만 한정되어 있다. 개개의 여성들의 자기 삶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서 우울하다. 다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문은희는 ‘관계성’을 회복하고 자기스스로의 ‘고민’하기를 권한다. 눈치 보지 말고 ‘자기다움’을 가꾸자 말한다. 일단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빈곤에 맞서다
유아사 마코토|검둥소

도쿄대 법대 대학원을 다니던 ‘수재’ 유아사 마코토는 95년의 어느 날 결심을 한다. “법학을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연구실을 빠져나와 빈곤 운동을 시작한다. 이미 좀 알려진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재활용품 가게를만들면서 냄비를 끓이며 저항하는 프리터들의 ‘재활력화’ 운동에 대해 말하는 책인 <가난뱅이들의 반란>의 마쓰모토 하지메나 20대 인디펜던트 노조를 말하는 우익 가수에서 전향한 아마미야 카린의 <성난 서울> 등을 읽어봤다면 일본에서의 새로운 방식의 젊은이들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유아사 마코토의 책을 읽으면 단순한 ‘치기’가 아닌 예민한 시선으로 지형을 읽어내는 한 명의 이론가이자 빈민들과 함께하는 현장의 명민한 ‘활동가’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