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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아름다운 당신의 오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하여 ㅣ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아, 사뿐히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장기하와 얼굴들’의 <우리는 느리게 걷자>는 지금 같은 무한경쟁시대를 정반대로 거슬러 오르는 삶에 대한 노래다. 항상 남보다 더 빨리 변화해야 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 “꼭 그렇게 사는 게 전부가 아니올시다” 하고 툭 던지듯 내놓은 삶의 방식이란, 그러나 보이는 것만큼 쉽게 꺼낸 말이 아닐게다. 여기 꼭 이 노래 가사처럼 느릿하게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표방한 인디 레이블이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소속사 ‘붕가붕가레코드’가 그렇다.  글 김주원 | 사진 노영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먹고 사는 것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6호선 상수역까지, 이른바 ‘홍대 거리’는 문화의 공간이다. 카페와 클럽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그곳에는, 일상의 피로를 달래는 각기 다른 방식의 위로가 있다. 재즈와 록큰롤이 서로 뒤섞여 때론 조용하고 때론 소란스런 문화의 난장 한 구석. 그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한 카페에서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 고건혁 씨를 만났다. 고건혁 씨는 평일에는 대전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서 인디레이블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말하자면 투잡을 하는 셈이다. 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도리어 질문을 받았다. “기자님은 취미 생활이 힘드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어떻게 힘들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우직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눈빛에는 재기가 넘쳤다. 지금은 공연도 대부분 끝났고 잠시 농한기에 들어갔다가 3월에는 또 앨범 작업에 들어갈 거란다. 농번기가 끝난 뒤의 여유 같은 게 느껴졌다. ‘붕가붕가레코드’는 2002년 서울대 학생들이 낸 창작음반인 ‘뺀드뺀드짠짠’에서 시작되었다. 고건혁 대표가 ‘붕가붕가레코드’라는 회사를 공언한 것이 2005년. 그러나 이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뭔가 재밌는 걸 해보자.”는 마음에 학내 독립 언론도 해 보고, 주위의 음악 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연도 해 봤다. 남들처럼 외국밴드의 명곡을 그럴싸하게 흉내 내는 것에 그치는 게 싫어, 멜로디도 엉망이고 가사도 제멋대로여도 자작곡 위주로 연주하려는 사람들끼리 음반도 냈다. 그것이 ‘자취방 싸운드’를 표방한 ‘뺀드뺀드짠짠’이었다. 학생들이었으니만치 돈대신 몸과 머리를 총동원한 결과였다. 집에서 곡을 만들면 학교에서 공CD로 굽고 표지도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십여 장, 이십여 장 만든 것이 ‘붕가붕가레코드’의 음반판매전략(?)인 ‘수공업 소형 음반’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이제 다들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 등으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꼭 직업과 음악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까? 둘 다 하면서 먹고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 고민의 결론이 바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먹고 사는 것. 그걸 위한 방법이 자작곡이고, 수공업 소형음반이고, ‘붕가붕가레코드’였다.

인디 음악은 방법론의 문제
그러나 회사는 차렸지만 여전히 이름뿐이었다. 2007년까지만 해도 ‘붕가붕가레코드’를 제대로 된 레이블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끼리 유지되던 동아리에 더 가까웠고, 전부터 입소문을 타던 소속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가 <앵콜요청금지> 등으로 대중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받았을 때도 수수방관하다 떠나보내기도 했다. 좋든 싫든 지금의 ‘붕가붕가레코드’의 유명세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대중적 인기에 힘입은 셈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골든디스크 ROCK상’을 수상하는 등 ‘장기하 신드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디 씬 중 가장 주목받는 밴드가 되었다. 처음 ‘장기하와 얼굴들’이 유명 포탈 검색어에 올라왔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회사 전체가 술렁였단다. 다음 날 치킨 광고 섭외 전화가 걸려온 이후부터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다마고치 키우는 기분이었어요. 그 때 수공업 음반인 <싸구려 커피> 싱글이 1만 3천 장이 팔렸고, 정규 앨범 <별일 없이 산다>는 4만 3천 장이 나갔죠. 신나게 만들었고 정신없이 바빴어요.” 이쯤 되면 밴드도 레이블도 더 키워보고 싶은 상업적인 욕심도 생기지 않을까. 또 초심이 변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저는 집착해서 좋을 게 없다고 봐요. 물론 저희 나름의 야망은 있죠. 올해에도 노력했는데 여력이 많진 않았고요. 하지만 우리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장기하는 이제 뜰만큼 떴다고 봅니다. 장기하가 그렇게 독특한 캐릭터는 아니에요. 장기하는 장르라기보다는 방법론이죠. 물론 장기하가 뜬 덕분에 수년 동안 이룰 걸 짧은 시간에 얻었죠.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우리 힘으로 느릿느릿 갈 거라고 봐요. 저는 음악인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본이 있느냐 없느냐가 인디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거대 자본에 독립적이에요. 돈을 벌면 아무래도 사람이 달라지는 게 있겠지만,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가는 방향에 대한 자신이 있어요.”



하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주목받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을테지만, 고건혁 대표는 그 자신의 별명인 ‘ 곰사장’처럼 무덤덤해보였다. ‘악덕 곰사장’이라는 소리도 듣지 않느냐는 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그것도 제가 만든 이미지에요. 곰사장이라는 별명은 처음엔 고 사장, 고사장 이러다가 곰사장이 되었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제 닉네임으로 씁니다.” 대부분 먹고 살기 바쁜이 시대에, 취미와 일상을 병행해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걸 회사라는 형태로 운영해나간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아요. 뭐든 하려면 엉덩이가 가벼워야 해요. 저희 모토 중 하나가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거든요. 단, 회사에 개인 돈을 쏟아 부으려고만 해서는 일이 잘 안 되죠. 개인 생활이 지속되어야 하고 싶은 일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장기하와 얼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요 ‘내 이름(예솔아)’의‘ 예솔이’였던 소리꾼 이자람의 ‘아마도이자람밴드’, 인디 최초(?)의립싱크 댄스그룹 ‘술탄오브더디스코’, 개그 센스가 돋보이는 얼터너티브 라틴 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등 개성 넘치는 밴드들이 포진해 있다. 이른바 ‘홍대 인디 씬의 예능선수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재기발랄한 멤버들이 가득하다. 이들 모두가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대박’이 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을 일궈나가면서 독자적인 팬층을 만들어가고 있다. ‘붕가붕가레코드’는 이들 뮤지션 대부분이 투잡을 하고 있기에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가능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투잡 뮤지션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거예요. 게다가 이제 우리 회사에도 상근자가 조금씩 생기고 있거든요. 뮤지션이 아닌 사람들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에요.”

“자신의 선명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건혁 대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나름 거창한 고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건 스스로 말하듯 ‘붕가붕가레코드’ 식구들 모두 소심하고 느릿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장기하가 노래했듯이,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장기하와 얼굴들, ‘별일 없이 산다’). 하고 싶은 걸 기왕이면 아주 적극적으로 소심하게, 차근차근히 진행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곰사장은, ‘붕가붕가레코드’는 별일 없이 산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푸른숲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고비를 넘겨왔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 레이블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함께 했던 사람들의 수다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별로 잘난 것도 없는 주제에 소심하게 일보 전진에 후퇴를 거듭하며 용케 극복해 왔다며,
“이런 애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고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는 게 곰사장의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