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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지붕 뚫고 하이킥>, 마음에 하이킥을 날리다

출처 : MBC홈페이지


가족들의 단란한 TV 시청시간인 평일 저녁. 그러나 TV 속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이 가족, 범상치도 않고 단란하지도 않다. 늙고 고집 센 가장(이순재), 엉뚱하고 터프한 큰 딸(이현경), 장인에게 구박만 당하는 소심한 사위(정보석), IQ는 높은데 EQ는 떨어지는 아들(최다니엘), 의리파 천방지축 손자(윤시윤)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어린 손녀(진지희)까지. 이들만으로도 복작복작한데, 시골에서 상경한 두 자매(신세경, 신신애)까지 끼어들면서 이야기의 스케일(?)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은 평범한 듯 비범한 우리네 일상을 비춘다.

공감하는 아픔, 애틋한 웃음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수 없다>, 그리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만든 김병욱 PD는 ‘시트콤의 명장’으로 불린다. 그만큼 대중의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탁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시트콤은 상황 속에서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일상적인 소재를 과장된 연출로
다루는 게 보통이지만, <지붕킥>은 다른 시트콤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부분들을 다뤄왔다. 부녀갈등이나 친구들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싸움, 알콩달콩한 연애사같은 평범한 소재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같은 제법 묵직한 내용도 가리지 않는다. <지붕킥>의 강점은 이
런 내용들을 이야기 속에 잘 버무린 뒤 시청자들에게 일부러 생색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내미는 것이다. 정음(황정음)의 취직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의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취업낙오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수많은 20대의 상황이 정음과 너무나 맞닿았기 때문이다. 지훈(최다니엘)이 직장에서 기합 받고 있는 여자 친구 정음을 끌고 나오며 화를 냈을 때, 부잣집 아들에 엘리트인 지훈은 정음의 마음을 모를 거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점점 계급 간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를 생각하는 건 지나친 것일까. 순재네 집에 얹혀살며 식모살이하는 세경과 신애의 이야기도 <지붕킥>의 현실조차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꾸준히 환기시킨다. 다행히 돈 많은 집에 들어와 살 수 있게 되었지만,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늘 아빠만 기다려야 하는 세경의 삶은 지방-서울, 하층민-부유층이라는 양극단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너무나 현실적인, 그러나 너무나 따뜻한
그럼에도 <지붕킥>이 따뜻한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우리네 삶 속에 언제나 웃음의 요소가 숨어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순재와 자옥(김자옥)의 ‘늙은 연애’를 누가 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독선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 순재도 술에 취해 줄리엔(줄리엔 강)의 등에 업혔을 땐
엄마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지 않았나. 단가 계산도 제대로 못해서 장인한테 늘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보석(정보석)도 족구할 때만큼은 ‘족사마’로 불리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고 말이다(앙심품은 순재 때문에 사무실에서 또 쫓겨났지만). ‘생각 없어 보이고 놀기 좋아하는 요즘 여자’ 정음도 “자신있게, 당당하게, 황정음답게!”를 외치며 오늘도 생기발랄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편, 조숙해도 천상 어린애인 신애는 그렇기에 더욱 더 세경의 소중한 미래다. 전작 <하이킥>보다 웃음의 요소는 줄었다지만, 애환과 해학이 버무려진 <지붕킥>이 오히려 시트콤의 성장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지붕킥>이 남긴 것은 20%대의 높은 시청률과, 스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질 배우들과, 코믹 명장면을 시청자 스스로 편집한 ‘움짤(짧은 동영상)’만 은 아닐 게다. <지붕킥> 덕분에 우리네 삶을 조금이라도 웃으며 돌아볼 수 있음이 고맙다. 글 김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