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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추천 도서

20대 예술가의 일어나지 못한 ‘풀’

풀이 눕는다
김사과|문학동네

‘예술가’라는 말은 늘 멋져 보인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설치물을 만들고, 조각을 하고, 글을 쓴다는 건 멋져 보인다. 우리는 TV에 나와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서 ‘진솔함’까지도 느낀다. 잡지나 신문을 보면서도 마찬가지. 어느덧 그 미디어의 기사를 읽거나 보고 있는 나는 예술가가 된것 같다. 최소한 영감은 받은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문화의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야기를 위해서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문화생산자’, 즉 아티스트 말이다. 두 명의 20대 예술가 커플이 있다. 한 명은 시를 쓰고, 다른 한 명은 그림을 그린다. 마치 시를 쓰는 레논과 그림을 그리는 요코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행복할까? 그림을 그리는 남자 ‘풀’은 공장을 다닌다. 창작시간을 빼앗기기 싫어서 벌어먹고 겨우 월세를 낼 수준만큼만 일한다. 시를 쓰는 여자 ‘나’는 그냥 옥탑방 ‘풀’의 집에 산다. ‘나’의 일상은 그를 기다리고, 시를 쓰는 일이다. 서로는 자신들의 작업의 순간에 ‘몰입’하고 그들의 영감은 늘 충만하다. 집주인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것은 다반사이고, 생활비가 떨어져서 다시 일을 가야하는 순간, 알고 보면 그 때가 가장 작업들이 잘 되는 순간이다. 문제는 지금의 고생이라는 것이 ‘나중’에 대한 기약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런 건 없다. ‘나’는 ‘주요’ 대학을 그만뒀고, ‘풀’은 ‘알만한 대학’ 미술과를 나온 것이 아니라 공고를 나와서 공장에서 일하다가 미술을 시작했다. 물론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펼쳐진 일상이 ‘시궁창’인 건 이들의 ‘실력’ 탓일까. 그림은 전시회에 걸리지 않고, 시는 문예지에 뽑히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위해 돈은 필요하고 ‘나’는 동생에게 돈을 꿔다 쓰며 ‘기생충’ 취급을 받고, 집에서는 얼른 ‘단꿈’에서 벗어나 부모님의 기대에 부합하는 일을 하라는 종용을 받는다. ‘풀’이 다니는 공장은 사실 ‘작은 아빠’의 공장이다. 만약 그마저도 없었다면. ‘소비’조차 할 수 없게 된다면. 부모 바깥의 20대의 생활이 그렇지 않나?
종종 예술에 대한 비유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낭만적이고 초현실적인 어떤 것? 마찬가지로 예술가들도 ‘좀 굶어봤지만’ 결국 대성하는 어떤 사람들? 실력이 없어서라고? 27살 소설가 김사과는 그런 단꿈을 믿지 않는다. 아니 사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완전고용의 신화가 깨어진 시대의 20대들이 다 그 상황 아닐까. ‘스펙만 갖추면’이라는 ‘희망고문’이 주는 ‘시궁창’인 삶. 소설에서 풀은 아예 ‘누워버’리고,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김수영의 시 <풀>은 다시금 일어나는 ‘풀’을 이야기하는데. 김사과의 ‘풀’은 아예 일어나지 못했다. 우울했다. 하지만 그 풀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으므로. 글 양승훈


너는 모른다 정이현|문학동네

정이현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서래마을의 맨션에 사는 한 가족. 사업가 아빠와 전업주부 엄마. 음악 하는 첫째 딸.
의대에 다니는 아들. 그리고 귀염둥이 막내 딸. 그런데 어느 날 막내가 사라진다. 서로는 서로가 갖고 있는 심증으로 아이의 ‘실종’의 이유를 묻는다. 사업관계로, 혹은 친구 때문에, 혹은 또 다른 이유로. 하지만 나중에 최종적으로 알게 되고 찾게 된 것은 서로 잘 ‘모른다’라는 것이다. 모두 손쉽게 이해할 것 같은 사람들은 왜 서로에 대해 몰랐을까. 같이 산다고 가족인 건 아니다. 어떤 가족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


오래된 연장통 전중환|사이언스북스
‘통섭’을 말하는 생물학자 최재천의 제자이자 최초로 한국에서 ‘ 진화심리학’으로 박사를 취득한 전중환 교수의 책이다. 왜 사람들은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보면서 웃을까. 전중환은 현대 도시를 사는 사람들이 사실은 여전히 몇 천 년전의 상태에서 크게 변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인간의 모든 것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건 아니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고 거기에는 다양한 맥락들이 있다. 오히려 자세히 봐야할 건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구체적 양상들 아닐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