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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반두비>, 생생한 현실에 담긴 따뜻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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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비>는 ‘제2의 똥파리’라고 불리며 잠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국내의 이런 저런 작은 영화제들에서 상을 받았던 이 작품은,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인 2009년 말에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끝내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우리 국민은 요즘 <아바타>와 <전우치>라는 판타지액션에 흠뻑 빠져있다. 특히 <아바타>는 판타지 중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현실에선 다리를 못 쓰는 퇴역군인으로 무력한 존재이나, 첨단기술을 통해 완전한 신체와 용기를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이상적인 자연환경 속에서 이상적인 우애를 나누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아바타>는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인류 역사상 가장 사실적이라는 3D 기술로 전해준다. 관객은 이것을 통해 아름다운 환상에 빠지며, 극장을 나선 후엔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심지어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느끼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 식의 영화체험이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니 <반두비>같은 영화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두비>는 정확히 그런 판타지 영화들의 반대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판타지가 아닌, 우리의 생생한 현실 그 자체이다. 그것도 전혀 아름답지 않은 우울하고 어두운 한국사회의 치부를 이 영화는 그려준다. <아바타>가 마침내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 승리를 쟁취하고 새로운 삶으로 진입하는 결말인 것과 달리, <반두비>의 결말은 행복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바타>가 관람 후 관객에게 상실감이나 우울감, 허탈감 등을 안겨준다면, <반두비>는 충만한 삶의 느낌을 전해준다. <반두비>가 허황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한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다. 남자주인공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로서 한국인 사장에게 월급도 못받고, 욕설을 들으며, 얻어맞기까지 하는 처지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한국인 여고생을 만나게 된다. 이 여고생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다. 한국인이므로 강제출국 위협을 안 받을 뿐이지, 삭막하고 고통스런 삶을 사는 것은 이 여고생도 이주노동자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들이 만나 남녀의 차원을 떠나 인간적으로 소통하고 가까워지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얼마나 매몰차게 대하는지, 인종차별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그려간다. 인종차별엔 사장인 기득권층과 실업자인 일반 서민의 구별이 없다. 모두 남자주인공을 밀어낸다. 여고생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성인업소에서 손님으로 온 담임을 만나 처음으로 면담기회를 잡았을 정도로 외롭게 그려지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약자와 타자들이 얼마나 악전고투를 치르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런 약자와 타자가 만나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모습이 보는 이를 따뜻하게 한다. <아바타>같은 장쾌한 물량공세와 액션은 없지만, 우리 현실의 인간적인 정을 더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이야기 전개가 지겹지도 않아서, 큰 부담 없이 볼 만한 작품이다.

하재근|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 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