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길에게 길을 묻다

지독한 뜨거움에서 생명을 마시다 ㅣ 에디오피아 다나킬

한 나라를 생각할 때 생각나는 이미지가 그 나라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사고일 수 있다. 대부분 에디오피아를 기아, 내전, 가뭄, 뼈만 앙상한 아이들, 문명도 문화도 없고, 헐벗은 원시 종족들의 척박한 땅으로 생각한다. 또 어쩌면 요즘은 아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에디오피아산 골드빈의 원산지라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가 모로코, 튀니지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자연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라면, 그리고 솔로몬 왕조에서 시작한 3천여 년의 긴 역사를 지닌 초기 기독교 왕국이라면, 게다가 고유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독립국가라면 좀 달라 보이지 않을까.


뜨거움이 만들어낸 화려함의 극치에 빨려들다
이번 에티오피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다나킬을 꼽겠다. 그 정도로 그곳은 나에게 강렬함과 뜨거움을 선사했다. 왕성한 화산 활동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으로 알려진 땅, 다나킬. 다나킬을 가기 위해서는 에티오피아의 소금 교역 중심
도시인 메켈레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출발할 때는 푸르던 산과 들판이 다나킬에 가까울수록 점점 황폐한 땅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다나킬 주변의 지형은 나무 하나 자랄수 없는 그야말로 척박함이었다.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
중간의 거점도시인 베라힐레부터 현지 무장 경찰과 현지 안내인과 함께 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 9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아메드 엘라! 낮에는 강렬한 더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30분 떨어진 다나킬에 가야 한다. 더위는 마치 비경을 머금고 있는 곳에 경계 근무를 서는 초병처럼 앞을 내주지 않고 막고 섰다.
그 언젠가 바다였던 다나킬!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 1,200㎢에 달하는 땅엔 소금만 남았고, 그 양만해도 112만 톤이 넘는다. 평균 해면보다 116m나 낮은 이 땅엔 연일 50도를 오르내리는 열기로 가득 차 있지만, 드넓은 소금 사막과 소금 호수, 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간헐천, 가지각색의 신비로운 색을 보여주는 유황 호수, 유황과 소금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유황 소금 기둥 등, 이 지구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구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신비로운 색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곳은 마치 외계행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광이었다.


가장 척박한 땅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채취하다
오랜 세월 죽음의 땅으로 유명한 이곳!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칠고 용맹스럽기로 소문난 아파르족 뿐이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소금을 채취하여 세상에 내다 팔며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간다. 지금은 그들을 솔트카라반이라 부른다. 이들은 가장 뜨거운 12시 전에, 육각형 모양의 소금 사막 바닥 위에서, 소금을 채취한다. 그리고 그 채취한 소금을 팔러 4일을 걸어 베라힐레로 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 뜨거운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반복된 삶을 산다. 내 사진기의 피사체로 흡사 경건해 보이는 그들의 걸음이 들어왔다. 걸음걸음, 하나하나가 내 심장에 박힌다. 가볍게 밀치고 나가는 인내의 걸음에서 왠지 모를 경건함과 경외감까지 이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다면! 그렇다. 나는 저들의 걸음걸이에 동참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두 발을 딛고 서 있기 힘든 이 더위에서 조차 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물 한방울의 감사를 마시다
사막에서 물은 생명이다. 한줄기의 물도 구경 할 수 없는 이곳에서 물은 가장 중요한 식수원이다. 먼지 가득한 마른 바닥에 누워 뜬눈으로 잠을 청한 후에 맞이한 아침에 머리는 먼지로 푸석푸석해졌다.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싶었지만 이곳에선 너무 큰 사치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한 방울의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조차 감사히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난생처음 영상 50도를 넘나드는 이곳에서 나는 스스로 나약함을 느꼈다. 결국 그 시간은 내 자신을 겸손으로 몰아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허용된 곳에서 얼마나 많은 풍요를 누리며 살았는지…. 그 풍요로움에 감사를 더하지 못한 내가 너무나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시는 게 소원이었던 이곳을 벗어나 나는 지금 내 삶에 와 있다.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래야 한다고 마음을 다 잡는다. 나에게 감사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알고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후에 저장해둔 물 한 동이를 이고 갔던 그들은 어쩌면 여러 사람의 생명을 이고 가는 것일지 모른다. 그 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 다시 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돌아가는 것조차 두려운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그 척박한 땅에서 존재하는 그들의 삶이 더 없이 풍요롭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그 귀한 어깨를 내어주며 인사한 가이드 알리에게 안부를 전한다. 아메쎄그날로!(고맙습니다!)

신미식|디자인을 전공한 후 15년 가까이 그 분야에서 일해 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사진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17년 동안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여전히 여행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독한 방랑벽을 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