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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제 3자는 빠지세요

“선생님. 왜 자꾸 아침에 전화하셔서 우리 엄마를 깨우세요? 엄마는 밤새워 일하시고 새벽에 들어오신다고요. 아침에 주무셔야 밤에 또 일을 나갈 수 있다고요. 학교에 지각하는 것은 제 일이잖아요. 저를 야단치면 되지, 왜 아침에 전화하셔서 우리 엄마에게 제가 지각을 자주 한다고 말씀하세요! 왜 우리 엄마 힘들게 만드세요?” 고등학교 2학년 인식이가 담임선생님께 내지르는 소리는 교무실 전체를 울렸다. 여선생님이시면서 젊은 그 친구의 담임교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옆 자리에 앉아 계신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께서 점잖게 타이르셨다. “이 친구야. 자네도 이유가 있겠지만 담임선생님께서 자네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여기가 교무실이란 생각도 해야지.”
밤새 잠을 못 잤는지 눈에 잔뜩 핏발이 서 있는 인식이는 자신에게 충고를 하는 선생님께 더 큰 소리로 말하였다.
“제 3자는 빠지세요!”
순간, 교무실에 정적과 냉기가 흘렀다. 그리고 인식이는 주먹을 쥔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난 인식이를 번쩍 들어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내 품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식이를 억지로 끌고 본관 건물 밖으로 나와 운동장 한 쪽 구석에 있는 나무 그늘 밑까지 갔다. 그대로 그 친구를 교무실에 두었다가 교무실에 있는 제 3자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아니 어쩌면집중포화를 맞기도 전에 스스로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억지로 인식이를 의자에 앉히고 나도 그 옆에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녀석은 계속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괜찮아. 난 어차피 신경 안 쓰니까 하고 싶은 소리 다 질러봐.”
조금 망설이던 그 친구는 곧 쌍스러운 소리를 섞어가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이미 그 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아! 더러워서 선생 못 해먹겠네. 내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에게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선생을 해야 되나!” 식이는 갑자기 멍청해진 얼굴로, 그리고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씩 웃고 나서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마! 이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고 네 담임선생님이랑 너한테 제 3자 취급 받은 선생님들 마음이 그러실것 같아서 한번 소리 질러본 거야. 너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나도 소리 한번 질러본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내가 하는 말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해.”
“아니에요. 하고 싶은 말 다 했어요. 선생님… 죄송해요.”
“내가 괜히 너 말 끊었나 보다. 미안하네. 더 소리 질러야 네 맘이 좀 편해질 텐데….”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내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 썅! 어른들이 개야? 개도 아니면서 왜 개떼처럼 덤벼들고 난리야! 지들이 교무실에 갈 때까지, 담임 앞에서 그 말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왜 여럿이서 공격하고 지랄들이야. 나쁜….”
내가 내뱉는 거친 소리를 듣던 인식이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돌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방금 인식이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말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작은 미소를 짓던 인식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 선생님. 실은 어제 엄마가요….”
인식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울음을 토해내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그 친구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울어, 실컷 울어라! 인마! 네가 왜 죄송한지 모르겠지만 마음껏 울지도 못하면 너무 억울하잖아. 괜찮아,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실컷 울어! 아주 크게 울어도 괜찮아!"
인식이는 내 품에 기대어 아주 큰 소리로 한참을 울고 난 뒤 말을 했다.
“엄마가 어제 일하던 식당에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안 드시던 술까지 드셨어요. 그런 상황인데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셨어요. 계속 전화기에 대고 굽실거리는 엄마를 봤어요. 자식 때문에 무슨 죄인처럼 행동하시는 엄마를 보니까 화가 어요. 그래서…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화를 냈어요. 괜히 담임선생님이 미워서요. 옆자리 선생님도 …. 실은 제 잘못인데….”
“그랬구나. 그렇지 않아도 힘든 엄마를 네가 더 힘들게 해서, 엄마에게 죄송해서 그랬구나. 많이 힘든 너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이런 효자를 몰라본 선생님들이 얼마나 미웠을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인식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 말에 계속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는 칫 놀라더니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울고 있는 인식이를 꼭 껴안았다. 그렇게 운동장 한 구석에서 제자와 스승은 서로 감싸 안고 눈물을 흘렸다. 따뜻한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아침. 인식이는 딸기 우유를 세 개 가지고 교무실에 들어섰다. 어머니께서 우유 배달을 하기 시작해서 갖고 온것이라면서 내 자리에 하나를 갖다 놓았다.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께는 구십 도 각도로 인사를 하며 딸기 우유를 드렸고, 그 선생님께서는 인식이를 꼭 안아주셨다. 담임선생님과 우유를 나눠 마시면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인식이를 보며 마시는 딸기우유의 맛은 참 달콤했다.

문경보|현재 대광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국어를 매개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을 나누는 사십대 중반의 교사. 학생들에게서 느끼는 매력과, 그들의 눈빛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때문에 늘 학교 탈출을 꿈꾸다가 번번이 포기하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위해 학교를 벗어날 꿈을 늘 계획하는 이중적인 사람. 지금까지 만난 세상과 새롭게 만나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글 쓰고 수다를 떨면서 나날을 엮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