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은 <워낭소리>, <똥파리> 등과 함께 독립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작품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평론가상을 받으며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몇몇 해외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았다. 흥행도 독립영화치고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수상 경력을 보며 이 영화가 심오한 명작이라고 오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낮술>이라는 제목에서, 뭔가 술을 먹으며 인생을 토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술이 먹고 싶어진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술과 인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묵직한 작품 같은 인상을 줬다고나 할까?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그저 가벼운 소품이다. ‘픽’하고 웃을 수 있는 농담 같다고나 할까? 요즘 독립영화 중에도 만만찮은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은데 이 영화는 그런 것도 아니다. 화면이 거칠고 어둡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작비 천만 원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적은 돈과 가벼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든 일종의 조크인데, 깔끔하고 재밌다.

이 영화는 아주 가벼운 가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남자가 혼자서 여행을 갔는데 예쁜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남자가 홀로 시외버스를 탔는데 못생긴 여자가 옆에서 계속 떠들어대면 어떻게 될까? 모든 남자들이 하는 생각이다. 남자는 시외버스를 탈 때마다 자기 옆자리에 혹시 젊은 여자가 앉지 않을까 상상하고 기대하는 존재다. 낯선 곳에 가면 언제나 아름다운 여인과 뜻하지 않은 인연을 꿈꾼다. 물론 여자들도 그런 상상을 하겠지만, 남자에게 그런 경향이 특히 강하다. 또 남자는 어느 여자든지 일단 ‘걸리면’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은 그 남자의 지적 수준, 성격, 취향 등과 상관이 없는 극히 동물적인 본능에서 나온다. 바로 수컷의 본능인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수컷의 지리멸렬함을 보여준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이 낯선 곳에 갔을 때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자 그의 수컷다움은 비로소 눈을 뜬다. 그 여인은 한번 좌절을 주더니 다시 나타나 술을 사 달라고 한다. 그러더니 바닷가에 가자고 한다. 모든 남성이 꿈꾸는 판타지다. 그렇게 그 여자에게 홀린 남자는 결국 탈탈 털리고 만다. 그 때문에 한겨울 강원도에서 ‘개고생’을 하게 된다. 온갖 불쾌한 일을 겪고 강원도를 떠나려 하지만 그는 다시 아름다운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그렇다. 수컷은 이렇게 단순하다. 한편 그가 버스에 탔을 때 안 예쁜 여자가 계속 말을 걸어오자 냉정하게 그녀의 말을 끊는다. 그녀는 수컷에게 욕을 퍼붓고, 수컷은 그녀로 인해 봉변도 당하고 만다. 이렇게 여자 때문에 일상 속의 모험을 겪고, 곧잘 비루해지는 것이 수컷의 운명이다.
홍상수 감독도 이런 주제를 자신의 영화에서 많이 다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남자는 노골적으로 찌질하게 나오고, 술도 맛있게 먹는다. 이 영화는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고술도 맛있어 보이지 않지만 <낮술>이 보여주는 남자의 모습이 좀 더 리얼하다. 그런 면에서 <낮술>은 ‘수컷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재근|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 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쓴다.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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