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학교다  박원순 | 검둥소

<오늘>에서 ‘마을’을 화두로 다루었던 적이 있었다. 2009년 7월쯤 박원순을 인터뷰하러 ‘희망제작소’에 찾아갔다. 아직까지 몇 가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요새 청년실업 이야기하면서 걱정을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는 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볼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자, 보세요.” 하면서 스크랩한 숱한 자료를 들고왔다. “세상에 직업이 이렇게 많아요.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고요. 다들 애타게 젊은이들을 찾고 있어요!” 곧 많은 점에서 수긍했고 이내 희망제작소 회원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전작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에서 보았듯이 현장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우리네 삶에 담겨 있는 ‘희망’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실제 ‘대안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현재 움직이는 거의 모든 모범적인 대안학교, 자율적인 초등학교, 아동청소년 공동체들을 총 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줄 한줄 읽어 내려가면서 박원순의 마을과 공동체를 향한 낙관적 의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게다가 협동조합 등을 통한 ‘사회적 경제’ 이야기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서 ‘대안 경제’, 즉 자립의 기초를 말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가 없는데 박원순도 그 부분을 명료하게 잘 지적한다. “풀무학교 생협은 1977년부터 시작해서 비누와 빵을 만들어 직거래하고, 직판장을 운영하고, 졸업생이 요구르트 공장을 세웠다. 이후 어린이집이나 전원마을, 생활유물전시관, 에너지 센터, 장애인복지기관, 노인복지기관도 생겼다. 인구가 적어서 주민 조직이 활성화되는 데 20년이 넘게 걸리긴 했지만, 주민 조직도 굉장히 발달해서 10여 개가 넘게 운영되고 있다”(p.22). 그리고 ‘교사’들이 모든 것을 가르치는 체제에서 벗어나 아이들이‘마을’에게서 직접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한 지점도 너무나 적절하다. “합기도, 서예, 도예, 탁구 등을 모두 동네 안에서 배운다. 현장학습 장소는 거리가 멀지 않다. 마을 어른들과 마을에서 일하는 분들에게서 배우는 것이다”(p.32). 이러한 주민들의 ‘주인되기’는 우리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물질만능주의’와 ‘도시화’의 물결에서 다른 방식으로 ‘마을’을 구성할 때 놓쳐서는 안 될 논의들이다. 모두에게 마을이 ‘회복’의 공간이며 ‘공존’의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이 사람들을 회복하고, 아이들에게는 학교가 되어주고, 서로는 공존의 언어를 배울 때 다른 방식의 감각들이 생겨나고 다른 가능성들이 발생할 수 있다. 박원순은 그 감각을 찾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여행을 하고 있다. 글 양승훈


하우스 푸어 _ 김재영 | 더팩트
‘땅’과 ‘집’은 한국사회에서 보통 ‘부’ 혹은 ‘최소한의 밑천’ 같은 재산으로 상징된다. ‘땅’과 ‘집’에 대한 강한 몰두에 따른 충동은 때때로 부동산 투기, 땅 투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한국에서는 늘 참! 그런데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집’이 곧 ‘짐’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은 있지만, 빚에 짓눌린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MBC <PD수첩>의 PD인 김재영이 강남과 수도권의 재개발 지역을 취재하면서 그 실상을 보여준다. ‘욕망’의 끝에서 덫에 걸렸을 때 우리는 다른 어떤 방식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신을 옹호하다 _ 테리 이글턴 | 모멘토

요 몇 년간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등의 논의가 나오면서, 주로 생물학적 관점을 통해 신에 대한 공박이 잇따랐다. 그런 지점에서 이글턴의 책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한다. 저자는 도킨스와 히친스를 ‘디치킨스’라고 한데 묶은 후, (자연)과학이 포괄하는 범주와 기독교가 포괄하는 범주가 완전히 다르다는 주제로 논의를 전개한다. 예컨대, 히친스는 현미경과 망원경이 나온 세상에서 기독교가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글턴은 외려 기독교가 ‘과학적 설명’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이글턴은 기독교의 복음이 급진주의자와 인본주의자들에게 사랑, 자기 비우기 등 소중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글
턴을 읽으면서 다시금 ‘예수’를 따르는 것의 의미를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PEOPLE반짝반짝 이레숑문화동네 사람들아름다운 당신의 오늘사람과 사람햇빛 아래 노니는 삶김준영의 페북 친구life동선예감독자와 3분 통화공간공감편집장의 편지그 동네 가게길에게 길을 묻다한페이지 단편 소설살림의 나날임양의 사소한 일상오늘의 생각spirituality문화선교 리포트감성수업두 손을 모으다CCM 창착연대2013 특집책이 피는 출판사크리스천+인디밴드culture문화 다이어리추천 영화추천 공연추천 전시추천 음악추천 도서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클래식/국악의 숲을 거닐다서랍 속 미술관오늘, 을 읽다고전으로 오늘을 읽다영화 속 현실과 만나다TV 상자 펼치기비뚤어질 테다뉴스 따라잡기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