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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KBS 수신료 인상, 짚어볼 문제들

물론 KBS 수신료를 인상해야 할 이유는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올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선 1981년 이후 거의 30여 년째 2,500원으로 묶여 있다. 그동안 신문을 비롯한 대부분 매체 사용 비용이 몇 배씩 올랐다. 그러다보니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 비중이 전체 재원의 40% 미만으로 떨어졌다. 갈수록 광고를 비롯한 상업적 수입이 절반을 넘는 반 공영적 재원구조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정치에 흔들리는 공영방송
공영방송이란 모름지기 ‘이윤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으로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삼는 방송’이다. 여기에 급변하는 신기술 매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재원마련도 시급하다. 당장 디지털 방송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2012년까지는 현재의 아날로그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오래전에 이미 국민에게 약속한 국가 정책적 일정이다. 이런 막대한 신규 투자 또는 사업비를 방송사 스스로 마련하라는 것은 적어도 공영방송에 주문할 일은 아니다. 아예 공영방송임을 포기하고 민간상업방송으로 전환하라는 말과 같다. KBS를 수준 높은 공영방송으로 유지, 발전시킬 생각이라면 수신료 인상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듯 당연하면서도 절박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껏 수신료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KBS의 흔들리는 정치적 위상 때문이다. KBS가 흔들린다기보다는 KBS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 탓이다. 그들은 가장 비정치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용되도록 자율을 보장해주어야 할 공영방송을 마치 관영 또는 국영방송처럼 자의적으로 소유하고 이용해 왔다.
정권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사장부터 입맛에 맞는 인물을 찾아 앉히는 잘못된 관행을 반복해 왔다. 이런 KBS를 둘러싼 정치적 전리품 분배 공방이 계속되는 한 정권이 몇 번씩 바뀌어도 KBS 수신료는 올릴 수 없다. 30년이 아니라 50년이 되어도 여전히 2,500원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수준 높은 공영방송은커녕 갈수록 품위 없고 천박한 방송으로 남거나 특정 정치 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영방송으로 전락할 게 뻔하다. 본격적인 콘텐츠 경쟁에서도 살아남기 어렵고 그렇다고공익성 짙은 프로그램 제작 원칙을 지키기도 힘겨워질 것이다. 그야말로 공영방송 KBS의 위기는 출구를 참기 어려운 미로처럼 깊은 수렁이 빠져있다. 우리의 시대적 불행 중 하나이다. 특히 최근 KBS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공영적, 비상식적 행태들을 보면 KBS 수신료 인상은 물 건너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행사에 참여했거나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특정 연예인들의 출연을 막고 이를 항의하는 여성 코미디언을 즉시 고소하는 식의 대응 방식을 보면 한심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진정한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수신료 인상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합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그럼 언제인가라고 되묻고 싶다. 방만한 경영 구조를 개선하고, 효율적인 운용 전략을 수립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전 직원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노력을 먼저 하라는 식의 요구는 이제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동이 없다. 이제는 먼저 수신료를 현실화하고 더욱 더 철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을 수용하도록 요구하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KBS가 당장 버리고 가야 할 악습과 고질적 병을 치유해야 한다. 매번 개편 때마다 나타나듯이 순수한 의미의 편성적 고려가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 일부 시사교양 프로그램 폐지, 제작진 교체, 방송 시간대 이동 등과 같은 정치적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여전히 ‘코드, 관제, 밀실 개편 철회’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이는 KBS 기자와 PD가 존재하는 한 수신료인상 요구는 애초부터 정당성을 잃고 마는 것이다. KBS 안에서 먼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까지도 끌어안고 진정한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유 언론, 민주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 이상 KBS 수신료 현실화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 흐르지 않도록 KBS가 스스로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김기태|현재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총회 문화법인 이사, 문화선교연구원 자문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주로 미디어교육, 매체비평,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연구및 현장 활동을 계속해왔으며 그동안 주요 방송사 TV비평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왔고 현재는 한국미디어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