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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외로운 양치기 소년

최 선생님.
왜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왔다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생뚱맞게 지금 상황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냐고요?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제 말 좀 들어주시겠어요? 어쩌면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거짓말이란 것은 사실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양치기 소년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그 친구에게는 지혜와 용기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거기다가 목동이라는 직업까지 있으니 생활력도 있는 친구인데,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반복해서 했을까요? 그건, 그건 말이에요…. 아마도…
외로움 때문, 아니었을까요? 산 위에서 홀로 보내야 하는 그 외로움, 거짓말을 한 것이 밝혀지면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을 보고 싶은, 그 절절한 외로움 때문에 그 친구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사람 그리워하는 그 밑 마음은 보지 못하고, 아니 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이 속은 것에만 분노한 것은 아닐까요? 마을 사람들 중에는 양치기 소년보다 어른도 많았을 텐데, 왜 양치기 소년의 마음을 헤아려서 등을 두들겨 주거나 따스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거나, 아니면 우스갯소리라도 한 자락 풀어내지 못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도덕이라는 잣대를 날카롭게 들이대며 화만 버럭버럭 냈을까요? 어쩌면, 어쩌면 말이에요. 그것은 올바름에 대해 말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의 손상된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가끔 학교 아이들에게 그럴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결국 그 때문에 양치기 소년은 무시무시한 살육의 현장에 혼자 있게 되었죠. 과연 그 양치기 소년에게 외로움과 함께 공포감과 좌절감까지 느끼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요? 마땅히 양치기 소년이 치러야 할 대가였을까요? 그리고 그 양들은 모두 누구의 것이었을까요?

최 선생님.
선생님 반 영균이가 어제 선생님께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의 지갑을 훔친 것은 아버지가 학교에서 와서 혼나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고…. 선생님은 어이없어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지요. 그런데요. 왜 자꾸 제 귀에는 그 말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외로워하는 영균이의 하소연으로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월권을 했어요. 전 영균이의 담임도 아니면서, 그리고 선생님께 참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영균이를 따로 만났답니다. 그리고 영균이에게 조용히 아버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물어봤답니다. 한참을 입술을 깨문 채 가만히 있던 영균이가 긴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버지는 저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왜 엄마를 집에서 나가게 해요? 지겨워요.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것도, 술 먹고 아버지가 들어온 날 친구 집으로 도망가서 자는 것도 이젠 지겨워요. 아버지는요, 아니 그 인간은요, 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천만 번도 더 해야 되는 사람이에요.”
선생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가슴이 왜 그렇게 답답하고 메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그 녀석 아버지도 아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균이를 꼭 껴안고 말했습니다.
“그래. 영균아 미안하다. 너 정말 힘들었구나. 미안하다. 영균아, 정말로 미안하다.”
제 품에 안겨서 한참을 가만히 있던 영균이가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친구의 등을 쓸어주면서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더니 영균이는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우는 중간에 겨우 말을 이어가면서 영균이는 그렇게 말을 했어요. 저는 더 힘을 줘서 영균이를 껴안고 말했습니다.
“아니다. 영균아, 내가 잘못했다. 네가 그렇게 힘든 줄은 나는 몰랐단다. 미안하다. 너를 외롭게 만들어서, 너를 춥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영균이는 대성통곡을 했어요. 정말 소처럼 붉은 울음을 울어댔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던 영균이가 저를 힘껏 껴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라고 했어요. 그 덩치 큰 놈이 아빠라고 했어요. 아빠라고….
최선생님도 보이시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아버지와 깊게 깊게 만나고 싶어하는 영균의 그 곱고도 슬픈 마음 보이시죠?

예, 최 선생님.
여기까지가 영균이와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친구가 물건을 훔친 것에 대해 용서를 해주자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교칙에 따라 절차를 거쳐 처벌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마음에는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과 저는 그래도 이 땅에서 스승이라는 소릴 듣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닌가요? 영균이를 더 이상 외로운 양치기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 그리고, 그리고 말입니다. 어쩌면 선생님과 나도 위로의 자리가 하나쯤 필요한 양치기 소년들이 아닐까요? 진정한 사람 한 명 만나기를 애절하게 바라는, 외로운 양치기 소년들… 아닐까요? 전… 그렇거든요. 이제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은 그만 하고 싶은 외로운 양치기거든요.


문경보|현재 대광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국어를 매개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을 나누는 사십대 중반의 교사. 학생들에게서 느끼는 매력과 그들의 눈빛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때문에 늘 학교 탈출을 꿈꾸다가 번번이 포기하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위해 학교를 벗어날 꿈을 늘 계획하는 이중적인 사람. 지금까지 만난 세상과 새롭게 만나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글 쓰고 수다를 떨면서 나날을 엮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