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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기적을 노래하라, 엘 시스테마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의 열풍이 올 여름을 뒤덮었다. 일개 예능프로그램의 인기라고 보기엔 너무나 거대한 사회적 반향이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음악, 하모니, 조화의 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보는 모든 사람과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합창단원을 감동하게 했다. 이런 조화와 하모니, 음악의 힘이 단지 예능프로그램 속에서만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사회의 황량함이 조금은 치유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그때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기는 것 아닐까?
이런 의문에 답을 제시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마침 상영 중이고 반응도 꽤 좋다. 바로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다. 이 영화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 긴재단 이름을 줄여서 ‘엘 시스테마’라 한다.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1975년에 카라카스의 빈민가에서 사비를 들여 전과 5범을 포함한
11명의 청소년에게 음악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당시 카라카스 빈민가는 폭력범죄, 포르노 등이 넘쳐나 해가 진 후엔 외출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들은 총격전에 희생되기 일쑤였다. 이 다큐멘터리에도 음악학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총격을 당한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라카스 아이들에겐 미래가 없었다. 물질적인 지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즉 희망이 없었다. 희망만 있다면 설사 빈곤하더라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겐 또 유대감을 느낄만한 공동체도 없었다. 무엇인가에 도전하지 않으므로 성취감도 느낄 수 없었다.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생각했다.‘ 음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음악이 아이들에게 공동체 정신을 길러 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도 그런 일이 벌어질까? 어쨌든 그는 실행에 나섰고 베네수엘라 정부가이에 호응해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거두절미하고, 기적이다. 음악은 기적을 창출해냈다. 빈민가 아이들은 정말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하며 협동심을 배우고 미래의 꿈을 꾸었다. 위험했던 빈민가는 안전하게 외출할 수 있는 곳으로 변모했다. 이 영화에서 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빈민가 아이에게 무엇이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나에겐 음악이 있어요.”
처음에 11명으로 시작했던 단원 규모는 현재 30만 명(!)에 이르렀다. 엘 시스테마 음악학교를 원하는 곳이 너무나 많아 지금도 맹렬히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 엘 시스테마 출신이 LA필하모닉의 지휘자가 되기도 했다. 베를린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엘 시스테마 아이들의 얼굴에서 음악이란 이래야 한다고 믿어왔던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소통과 순수한 즐거움입니다.” 엘 시스테마 다큐영화를 통해 그런 순수한 즐거움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확인해보자.

하재근|날라리의 기질과 애국자의 기질을 동시에 타고 났다. 그래서 인생이 오락가락이다. 어렸을 때 잠시 운동권을 하다, 20대 때는 영상 일을 했었고, 30대 초중반부터 다시 운동권이 됐다가, 요즘엔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 대중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때때로 책도 쓰며 인터넷 아지트는
http://ooljiana.tistory.co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