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나라, 그중에서 뉴욕! 그 뉴욕에 들어가는 JFK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노란색 택시 안에서 창밖으로 스치는 광경을 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뉴욕은 이미 도시의 이름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문화아이콘으로 그 의미가 넓어진 지 오래다. 세상의 그 어떤 도시가 뉴욕처럼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을까.


인 뉴욕 In New York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묘한 느낌이 든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인데도 영화와 다른 미디어를 통해 너무 많이 접해서인지 전혀 낯설지가 않다. 뉴욕도 그렇다.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환상을 심어주는 도시처럼 느껴진다. 마치 프랑스의 파리가 만인의 로맨스인 것처럼 뉴욕 또한 뉴요커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 모든 인종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의 뉴욕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뉴욕은 19세기 전반에는 영국이나 중·북부 유럽의 게르만계, 후반에는 이탈리아 등, 남·동부 유럽의 슬라브계가 이민의 주류를 이루었고, 1855년부터 1890년에는 700만의 이민자가 이 도시에 상륙했다.
1980년대의 뉴욕시 인구 구성은 대략 백인 60%, 흑인 25%, 아시아계 3%, 인디언 0.2%, 기타 11%이고, 이 중에서 백인으로 분류된 유대인이 17%, 백인이나 흑인으로 분류된 푸에르토리코인 등 에스파냐계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인종들이 섞인 덕분에 이곳은 여러 색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그토록 독특했던 문화들이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은 채 서로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하기에 모든 사람이 동경하는 곳이 아닐까.

작은 꿈을 이루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나에게도 미국, 특히 뉴욕은 알 수 없는 꿈의 편린이 흩뿌려져 있는 곳이다. 그 꿈의 큰 자리에는 아마 센트럴파크가 차지하고 있어서일 게다. 그래서인가 뉴욕하면 대다수 뉴욕의 여행자들이 타임스퀘어를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나는 센트럴파크가 떠오른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뉴욕의 센트럴파크로 향했다. 젊은 시절 굉장히 좋아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이 해체 후 재결합 공연을 했던 그 센트럴파크를 찾아 나선 것이다. 1981년 공연실황 DVD를 보며 그 공원에 까마득히 모인 50만의 관객들을 보며 신기해했었다. 아마 그때, 언제 기회가 된다면 나도 저 영상의 공원을 밟아 보고 햇빛 창연한 오후 하늘을 맞대고 바라보며 누워 봐야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뉴욕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다. 그리곤 공원 안에 들어가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벌러덩 하늘을 향해 몸을 뉘였다. ‘아, 여기가 뉴욕이구나, 여기가 그렇게 오고 싶던 센트럴파크구나.’ 무엇인지 모르지만 머릿속을 스쳐서 마음에 쌓이는 상념들. 아마 그것은 행복감일지 모르겠다. 뉴욕을 보며 품었던 작은 꿈을 이룬 데서 오는 행복감.


사람의 일상을 기억하는 다리
맨해튼과 브루클린 지역을 이어주는 브루클린 브리지(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며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낭만적인 장소)는 철제 케이블과 고딕 양식의 아치스타일로 유명하다. 오후가 되면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부터 데이트를 하러 온 커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서울의 한강 다리들이 자동차의 통행만 위한 것이라면 브루클린 브리지는 뉴요커들에게 일상의 공간인 셈이다. 묵고 있던 숙소가 브루클린 지역이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다리를 건너 다녔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맨해튼과 허드슨 강의 야경이 너무나 멋져서 한참 동안 넋을 잃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다리 위를 서성이기도 했다. 브루클린 브리지가 주는 묘한 감성적인 느낌들이 싫지 않았다. 사실 도시의 다리를 걸으면서 낭만적이라고 느껴 본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나인데… 한달 동안 뉴욕에 머물면서 난 거의 매일 이곳에서 하루의 일상을 정리하곤 했으니까….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시 뉴욕을 여행하게 된다면 나는 가장 먼저 이곳에 올라 해지는 오후를 보내려 한다. 그리고는 이곳에 처음 와서 내가 걸었던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 당시를 생각하고 싶다. 그때의 일상을.

떠도는 예술가들의 예술혼
쇼핑의 거리로 많이 알려져 있는 소호Soho. 원래 소호는 예술가들, 특히 예전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몰려 살던 곳이기도 하다. 싼 집세와 작업하기 좋은 로프트천장이 높고 창문이 큰 형태의 건물가 그들을 정착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워낙 맨해튼의 땅 값이 폭등해서 그런 인식은 없어지고 오히려 가장 고급스럽고 운치 있는 동네로 변해 버렸다. 가난한 예술의 열정이 꿈틀대던 곳에서고급 명품 가게들과 상점이 즐비한 쇼핑의 즐거움이 가득한 곳으로 변한 것이다. 결국, 가난한 예술가들은 소호를 떠났다.
예술과 자본을 생각하게 한다. 요즘은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예술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인 듯하다. 자본과 예술의 역학관계를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예술, 후대에 인정을 받고 생명력이 긴 작품은 어쩌면 자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카페나 선술집으로 변해 버린 이 도시 골목에서 여전히 남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갤러리들과 자신의 작품을 팔기 위해 직접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뜻밖에 선물일 것이다. 나는 지금 오래전 이곳에서 땀과 열정을 쏟아 부었을 예술가들의 체취를 조금이나마 느끼며 내 앞에 있는 길을 걷는 여행자다.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려운 뉴욕이 주는 매력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알 수 없는 진한 그리움이 나에게 다시 그곳을 가라고 떠미는 듯하다. 그 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뉴욕을 느껴보라고 말이다.

신미식|디자인을 전공한 후 15년 가까이 그 분야에서 일해 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사진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17년 동안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여전히 여행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독한 방랑벽을 소유했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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