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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11-12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7│살맛나는 시장의 리얼 스토리 - 서울 수유시장엔 <콩나물>

도시의 한구석에 정연하게 정비한 상업 구역을 시市라 불렀다면, 그곳에 행상들이 모여 교역하는 곳을 장場이라 불렀다. 시를 떠돌며 물건을 팔던 사람들을 행상이라 했고, 그 행상들이 모인 곳을 시장이라 했다. 여기에 사람들이 자리를 틀고 상설 점포들을 열었고, 비슷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밀집하면서 특정 공간을 형성하였다. 그렇게 나름의 상권을 형성한 곳이 이른바 큰 시장들이다. 장날, 장터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장터에도 그네들의 삶과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기에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잡지가 있다.  글ㆍ사진 김준영

상인들이 살아가는 시장 이야기를 하다
“우리 사무실은요, 수유 재래시장 안으로 쭉 따라 들어오시다 보면 한우고향이란 간판이 보일 거예요. 거기 3층으로 오세요.” 사무실이 한우고향 3층이라고. 수유시장 지역 잡지를 만드는 잡지답다. 2009년 9월, 시에서 진행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더하여 전통시장 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 마을 공동체를 맛깔나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문화예술 기획 프로그램인 ‘수유마을 시장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요리, 댄스, 난타, 전통춤, 컴퓨터, 심지어 목공 강습까지. 대형마트에 상존하는 문화교실 못지않은 문화교실이 전통재래시장 안에 생긴 것이다.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에 앞서 시장 상인들에게 다가서기 위함이었다. 자연히 수유시장 상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러니 시장도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장만 보게 하지 말고 무엇인가 콘텐츠를 같이 가져가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 상인들이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었죠. 시장에 찾아오는 손님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더 중요하잖아요” 시장문화활력소 전민정 실장의 말이다. 일하는 곳이 즐거워야 하고, 상인의 자부심으로 그득해야 그곳에 문화가 꿈틀댄다는 것이다.

리얼 시장 이야기를 하다
그러면서 생활 문화 주체자인 물건과 유통자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개별 프로젝트 성격으로 잡지에 손을 댔다. 그것이 지난해 10월. “사실 저희에게는 잡지 전문가도 없었고, 그렇다고 편집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처음에는 작가들이 기고를 많이 했어요.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면서 수유시장의 어떤 면을 잡지를 통해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죠.” 많은 TV 매체가 소개하는 전통시장은 한결같이 우리네 정, 흥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하지만 자신의 물건을 팔아 삶을 살아가는 장사의 꾼들이 모여 있는 곳에 정과 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요. 시장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정과 흥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곳이잖아요. 더 싸게 사려는 자들과 더 이윤을 남기려는 자들의 보이지 않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루어지는 곳이죠. 치열한 상호 작용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양쪽의 상호 작용의 끝에는 생존이라는 바탕이 깔려 있고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요즘 말로 리얼 시장 이야기를요.” 획일적 접근보다 입체적으로 접근해 시장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전민정 실장의 의도였다.“ 저도 공공미술을 했었죠. 미술을 하면서 한 사물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그리는 일에 익숙하죠. 그런 시각이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시장의 입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잡지가 우리 <콩나물>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예상외로 시장의 물건과 사람 속에 잠겨 있었던 풍성한 스토리가 많았다.

모두 읽을 수 있는 수유시장 이야기를 하다
이들이 지금껏 다룬 잡지의 특집 주제는 아주 흥미롭다. 지난 5월의 “시장과 꽃” 주제에서는 수유시장에서 일컬어지는 꽃과 관련된 단어에서부터 시작하여 잡지를 만들었다. 꽃게, 꽃등심, 꽃소금, 꽃상추, 꽃 멍게. 이것뿐 아니다. 꽃 모양의 하수마개, 꽃 모양의 나물, 꽃모양의 미역,꽃미남, 꽃 모양의 바지들. 이렇게 시장 안에 꽃이 많다니 읽는 내내 키득키득거릴 수밖에 없다. 9월호는 “시장과 패션”을 다루었는데, 실지로 모델도 시장 사람들이고, 옷도 시장 옷들이다. 그 특집을 읽으면서 어찌나 배꼽잡고 웃었던지. 시장 패션이 대세다. “처음에는 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작가들이 지면을 채웠죠. 그리고는 수유시장 상인들과 함께 모여 작업을 했어요. 쉽지는 않더라고요.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은 분들이니까요. 하지만 반응과 관심은 참 높다고 할수 있어요.” 글 쓸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가 잡지에 담겨 시장에 진열되면 금방 사라진다니. 게다가 여타 전국 잡지하고는 다르게 내용 확인이나 콘텐츠 재구성에는 훨씬 수월하다. 사무실에서 바로 나가면 되니까 말이다.

요즘의 고민은 어떻게 우리 수유시장을 넘어 여러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느냐이다. “한번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새댁이 반찬을 사러 이곳에 자주 들르다 한 가게 할머니와 친엄마 이상의 관계를 형성한 것을 취재한 적이 있었죠. 수요자와 공급자 관계의 이야기예요. 하지만 단순한 관계는 아니죠. 액면 속에 담긴 심리적 의도를 캐내서 이야기했어요. 어쩌면 이러한 이야기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해요.” 그렇다. 한 개인의 이야기와 그 개인이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가 모여 삶이 형성되는 것이고, 그것이 누구에게나 심정적 동의를 유발한다면, 그것이 문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상의 어려움, 수유시장의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확산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 유통 과정의 세련됨등 넘어야 할 것들이 많다. 다르지만 같은 수유시장 이야기, 같지만 다른 수유시장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것이다. 그것이 지역 잡지가 존재할 수 있는 의의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전민정 실장은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우리 잡지가 계속될지는. 재정적인 어려움도 솔직히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시장은 우리나라에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 시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매력적이죠. 그걸 이야기해야 하겠죠” 하며 웃는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시장문화활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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