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를 만난 여우는 길들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우가 말했다. “나도 너에게는 수없이 많은 다른 여우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여우가 말한 길들임은 어쩌면 서로에게 의미를 전달해 주는 거룩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도시 생태계에서 소외된 길고양이.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고양이 전문작가, 고경원 씨를 만났다. 글 이호은 | 사진 김승환


두 생명체가 나누는 짜릿한 교감
고경원 씨는 지난 2002년부터 독특한 방식으로 이름 없는 길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길들였다.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http://www.catstory.kr이라는 블로그에서 길고양이들의 사진을 담고, 고양이들의 삶을 나누고 있다. 그는 왜 고양이에게, 그것도 길고양이에게 끌렸던 것일까. “계기가 있었어요. 2002년에 종로에서 밀레니엄 고양이 행운의 삼색고양이와 같은 눈높이로 마주쳤어요. 나도 고양이를 바라보고 고양이도 나를 바라봤죠. 살아있는 두 생명체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짜릿한 교감을 했던 거예요.” 그렇게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가 고양이를 길들인 것처럼 고양이도 그를 길들였다. 이제 고경원 씨는 고양이와 관련된 책을 내고, ‘고양이로 시작해서 고양이로 끝나는’ 여행을 떠나고, ‘고양이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정도로 변화되었다.
길들여주던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거리에서 생존하게 된 ‘길고양이’들은 한때 ‘도둑고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길고양이는 음식물쓰레기를 헤집고 다니고, 발정기에는 아기 울음 같은 괴상한 소리를 내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대중매체에서 그리는 길고양이의 모습은 ‘거리의 무법자’ 또는 ‘없애야 할 해충’ 같은 이미지에요.”
개체수가 늘어나는 길고양이의 운명은 공존이 아닌 박멸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살처분안락사해서 해충처럼 박멸하려는 시도는 문제가 많다.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를 없앤 진공 상태의 지역에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다른 지역의 고양이들이 유입되고, 암고양이들이 새끼를 더 많이 낳으면서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이는 효과가 실제 거의 없다고 한다.
고경원 씨는 말한다. “도심의 생태계에서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먹을 것이 확보되면, 고양이들은 더 이상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는다고. 서울시 전역에서 실시하는 TNR 프로그램(길고양이를 잡아서Trap중성화 수술을 한 뒤Neuter 다시 제 영역으로 돌려보내는Return 과정)이 정착되면, 발정기에도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고 온순해질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작아 보이는 생명의 소중함
“물론 동물 보호 운동을 할 수도 있겠죠. 저는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 그러니까 블로그와 책을 쓰고, 전시회를 여는 일을 통해서 길고양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러나 길고양이의 생명도 존중하자는 이러한 취지를 두고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도 받아야 했다. “초창기에는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세상에 도와줄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양이 말고 사람을 돕지 그러냐?”
이에 대해 고경원 씨는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생명을 돕는 일에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생명들을 우선순위에 따라 줄 세울 때, 그 줄에서도 저만치 뒤로 밀려난 존재들은 누가 돌봐줄까? 아무리 기다려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뒷줄에 서서 죽어 가는 길고양이들을 생각하며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쓴다.”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안타까워하신다. 고경원 씨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으로 도시 생태계의 ‘가장 작은 자’ 중 하나인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고양이의 평균수명은 10년에서 15년 사이이지만, 길고양이는 2년에서 3년 정도밖에 못 살아요. 의외로 굉장히 짧죠.” 그렇게 단명 하는 길고양이들이 제명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2009년 9월 9일부터 매년 ‘고양이의 날’ 행사를 시작했다. 9월 9일이라는 날짜는 아홉 구九와 오랠 구久라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하여 “‘아홉’ 개의 목숨을 가졌다고 알려진 고양이가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택한 것이다. 길고양이 사진전시회를 비롯하여, ‘상징적 입양’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불러 생명을 깨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최초로 한 일은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일이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제가 길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밀크티’나 ‘꼬리’, ‘카오스 대장’ 같은 이름들을 붙여주었어요.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도 그 고양이들을 그 이름으로 부르며 기억해주세요. 그러면 허무하게 살다간 고양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있는 고양이가 되는 거죠. 너무 거창하게 들릴 것 같지만, 그렇게 길고양이에게도 ‘생명’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무도 그 존재를 기억해주지 않을 때라고 생각해요. 비록 고양이의 육신은 이 세상에 없어진다고 해도, 누군가가 제가 찍은 고양이 사진을 보고서, 길고양이가 아름답게 이 땅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준다면 의미가 있겠지요.”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http://www.catstory.kr


고경원 씨를 만난 이후에 달라진 것이 있다. 문을 열고 길을 나서면, 이전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눈에 띠지 않았던 고양이들이 하나 둘, 눈에 ‘밟히기’ 시작한 것이다. 아, 너희들도 여기서 살고 있었구나. 안녕, 인사라도 한 마디, 건네고 싶어졌다. 이제 나에게도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 하나가 생긴 것 같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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