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를 지나며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몸을 다해 일했던 젊은이들이 1990년대를 지나면서 변혁하고자 하는 대상이 희미해질 때쯤 공허함과 허전함에 시달렸다. 그리고 다음 발걸음을 딛지 못하고 망설였다. 세상은 변하는데 자신의 걸어온 길이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그런 때쯤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귀를 기울이게 하고, 과연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를 고민하게 한 사람이 있었다.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부터 시작해서 철학, 문학, 신학, 그리고 문화, 예술을 다루었던 그의 글들은 방황하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숨을 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에게 매료되어 진정한 영적 생활로 뛰어든 한국라브리 대표 성인경 목
사를 강원도 양양에서 만났다. 글·사진 김준영



라브리공동체는 프란시스 쉐퍼로 더 유명한다. 쉐퍼 목사를 만난 것과 한국에서 라브리라는 공동체를 시작하게 된 계기? 우선 나는 프란시스 쉐퍼Fransis Schaeffer 박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1983년에 스위스와 영국에 갔을 때 이미 쉐퍼는 후두암으로 사경을 헤맬 때였다.
그리고 내가 1985년 영국 라브리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이디스 쉐퍼 여사는 여러 번 만났고, 지금도 스위스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교류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 격동기를 거치면서 나 또한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방황했다. 개인의 신앙과 사회 참여 사이에서 굉장한 갈등을 겪었다. 당시 청년들에게 쉐퍼는 그 두 가지 갈등에서 아주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대안 인물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의 하나였었고.
특별히 쉐퍼 박사의 글이 영향을 준 이유가 있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철학적 질문은 삶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감성적 느낌을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내가 동의할 수 있어야 움직일 수 있었다. 쉐퍼 박사의 글은 이 부분에서 나에게 동의를 이끌어 냈다고 본다. 신에 대한 질문, 인간에 대한 질문, 내 인식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준 것이라 하겠다. 기독교가 비이성적이어야 하고, 비철학적이어야 하고, 비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꽤 불편했었고, 그것에 나름의 해답을 찾던 중에 쉐퍼의 글은 나에게 있어 가히 혁명적이었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스위스를 찾아간 것이고, 영국도 간 것이다.
쉐퍼 박사의 글이 굉장히 큰 영향을 주셨나 보다 스위스까지 가신 걸 보면(웃음).
그렇다고 볼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의 책은 두 번 태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삶이 달라졌고, 내 삶의 방향이 새롭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C.S. 루이스를 10년 전에 이미 한국에 소개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랬었다(웃음). 그의 진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쉬운 언어를 사용하여 글을 쓰는 것과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영성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C.S. 루이스는 책을 통해서 한국교회 영성을 고양케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라브리는 사실 쉐퍼 박사의 영향이 커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듯 보이는데. 라브리가 그런가. 우리는 학문 단체는 아닌데 말이다(웃음). 영적 생활을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 체험과 만남을 중요시 여기는 영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처럼 성경적 가르침을 잘 공부하여 추구하는 영성도 있다. 획일적이거나 한가지만 추구하는 영성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쉐퍼 박사는 그의 책에서 철학적 담론들, 문화, 예술 등과 관련된 글을 많이 썼다. 사실 지적으로 보이지만, 그는 굉장히 문화 예술 등에 깊이가 있었다. 그 속 흐름을 읽고 있었기에 실존주의의물음에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마 지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쉐퍼는 상당히 영적 생활을 강조한 사람이다. 영성의 한부분만 강조하면 자칫 불건전한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껏 이원론적 영성에서 신비주의적 영성의 두 단계를 거치며 성장과 쇠퇴를 거듭했다고 본다. 이원론적 영성의 문제를 간파하면서 개인의 영적 체험과 만남, 교제 등에만 초점을 맞추는 영성에 요즘 한국교회는 집중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성경은초월성을 이야기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합리성도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는 조화를 잘 이루어야 건강한 영적 생활 한마디로 영성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신비주의적 영성 중에는 불건전한 것도 많이 있다. 진리는 필요한 것이다. 그런면에서 우리 라브리의 영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어떤 역할인가
라브리의 영성은 단순히 하나님을 개인이 경험하는 것에 더하여 지속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한다. 인격이 변화를 얻고, 새롭게 맺은 세계관으로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게 사실 요즘 사람에게는 큰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시간에 찬양하며 잠깐의 뜨거워짐이나 유머를 동반한 설교를 들으며 유쾌해지는 것을 은혜 받았다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에서 라브리의 요구는 쉽지 않다. 나와 같이 이야기하고 공부하시는 분 중에서도 실제로 이거 어떻게 하느냐 그냥 마음이 좀 편하려고 교회 다니는 건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 그만큼 라브리의 영성은 삶 전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2010년을 지나는 지금에 라브리의 영성을 좀 더 이야기해보자. 나는 지금의 신비주의적 영성, 즉 개인의 체험, 경험, 만남이 주제가 많은 성도들에게 장점과 동시에 불건전한 신비주의의 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주는 좋지 않은 영향으로 한국교회는 힘들어 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더 걱정이 앞선다. 불건전한 신비주의 영성 이후에 냉소주의적 영성과 태도가 한국교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교회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 없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냉소주의적 영성에 괴로워하고 있다고 보면 맞다. 굉장한 엘리트 의식에 오는 냉소주의라 하겠다. 자기 방어의 기제일 수도 있고. 냉소주의가 사람의 모든 영역을 잠식한 것이다. 너나 없이 말이다.

그렇다면 냉소주의 영성이 지배하는
시기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이 부분은 굉장히 차분하고 진실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곳에 찾아오는 청년들 중 교회 지도자들의 2세들 중에는 아주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을 만나고 삶을 듣고, 말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앞섰다. 우리 세대의 그늘이 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두 가지로 말하고 싶다. 일단 현실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주변 환경이 불만족스러운데,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냉소주의 영성에서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작은 일에 즐거워해야 하는 영성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듯,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며 그것에 의미를 찾아 산다면 좋겠다 생각한다. 이런 영성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라브리에서는 구체적을
어떤 것을 훈련하는가.
훈련이라고 하면 좀 어폐가 있다(웃음). 스위스에서 시작한 라브리는 쉐퍼 박사가 무신론자들과 대화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규율이라고 해봐야 별 게 없다. 비기독교인들과 이야기를 해야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규율로 정해 버리면 소통 방법을 잃고 만다. 크게만 정해 놓았다. 오전에는 함께 이곳을 청소한다. 소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오후에는 함께 모여서 신앙에 관해 이야기 한다. 빙 둘러 앉아 성경을 읽으면서 함께 이야기하거나, 기도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한다.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자유시간이다. 일부러 묵언을 할 필요도 없고, 느리게 걸을 필요도 없다. 나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이야기해도 되고, 책을 읽고 싶으면 라브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단, 우리가 해야 할 것이라면 매 순간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곳이 없다는 것만 묵상하면 된다. 성속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 순간순간 정당한 성경적 근거를 통해 십자가와 복음의 능력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라브리가 추구하는 영성이라 하겠다. 그런 인식으로 대화하고, 밥 먹고, 청소하고, 쉬고, 책 읽고, 기도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듣는 걸 참
잘하시는 것 같다(웃음).
그런가?(웃음)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잘 듣는 것이다. 주로 많이 듣는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데 내 말만 하다보면 그들이 여길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이야기 할 때 듣는다. 그리고 이곳 주위를 걸으면서 기도한다. 아침에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내 영성에 중요한부분이다. 식사 시간에는 어떤 주제이든, 어떤 이야기든 함께 이야기를 많이 한다(실제 필자도 일박을 했는데, 아침에 성인경 목사 집에서 사모님과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큐티를 했다).
삶에서 분리된 영성은 어쩌면 껍데기일지 모른다. 내 삶에 모든 영역
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없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진지하게 탐구하고,
검토하고 그에 따라 진지한 걸음을 걸으며 예수를 인정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라브리 영성의 수식어는 참다움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2시간여 동안의 만남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편은 오히려 인터뷰를 청한 쪽이었다. 실제 위의 글 정도가 성인경 목사 이야기의 전부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틀 안으로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바꾸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듣고, 동의해주고, 덧붙이는 정도였다.
“한 가지 영성에만 집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영성을 인식하고 오히려 영성이 얼마나 넓은지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여기 양양에 와서 깨달은 건데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를 알았단 말이지요. 기독교 안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건전하고 다양한 영성이 있습니다. 한가지 영성이 전부를 다 대변한다고, 이게 다라고, 이게 진짜라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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