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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1-02 문 열자, 깃들다

문 열자, 깃들다 3│학교에서 피워낸 문화 꽃 - 서울 강남구 일원동 밀알학교

공간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학교가 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소통, 장애인 교육을 통한 미래의 공존을 예비하는 곳, 지역민들을 향한 나눔이 있는 밀알학교이다. 장애 아동 특히 정신지체 아동을 주로 교육하는 밀알학교는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을 교회 예배 장소로,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쉼터로 그 폭을 넓혀사용하고 있다. 정효진ㆍ사진 송건용


공간을 나누니, 편견이 깨어지고

밀알학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자면, 남서울은혜교회에 대한 선지식이 필요하다. 밀알복지재단을 만들어 밀알학교를 건립한 주체가 남서울은혜교회(홍정길 목사 시무)이기 때문이다. 홍정길 목사의 일반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시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밀알학교는 시작됐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좇아 교회를 위한 건물을 짓는 대신 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세운 것이다.
밀알학교는 자폐아와 같은 정서장애아들을 위한 학교로 현재 약 200명의 학생들이 초·중·고등부로 나뉘어 교육을 받고 있다. 건물은 학교 수업을 가장 우선해서 사용하고, 그 외 시간은 교회, 외부 기관이나 단체들, 특히 장애인 단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한 건물을 함께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런 자연스러운 접촉을 통해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장애인들에게는 비장애인들을 대면하고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공간의 나눔을 통해 서로의 벽이 허물어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우는 조화의 장소가 된 것이다. 물론 장애인학교와 교회를 한 건물 안에서 조화롭게 쓰기까지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성도들은 자폐아들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갈등이 있기도 했고, 한 건물을 같이 쓰다 보니 교회 활동에 제한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밀알이라는 것은 죽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법이다. 그들은 밀알 처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여 자신이 누려야 할 요구를 죽였고 그것을 통해 소외된 아이들과 어울리는 진정한 교육의 장을 만들어 냈다.


소통을 통해 움트는 기쁨

1996년, 처음 밀알학교를 건립할 당시만 해도 지역민들의 반대는 굉장히 심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전혀 없었던 당시에 장애인학교는 혐오시설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했다.
장애인들이 아파트 인근을 오가게 되면 자녀들의 교육에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며, 공사 현장을 막는 등 학교 설립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건립 허가를 얻어 학교가 완성되자 주민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시설에 있어서도 다른 장애인학교 보다 월등한 것은 물론 건축 미학적으로도 굉장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밀알복지재단은 학교 건물을 먼저 짓고, 아트센터로 사용할 신관을 지어 공간 나눔에 대한 폭을 늘렸다. 이렇게 생긴 밀알 아트센터는 문화적으로 변방인 이 지역주민들을 위한 곳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당에서는 매해 무료공연과 자선공연을 10회 이상 열고, 미술관은 언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그렇게 무료로 열린다고 해서 수준이나 질을 낮출 수는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안 하니만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들어오는 로비에 베이커리와 카페를 만들어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좀 더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땐 2층 북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데 북카페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바로 옆에 자리해 밀알학교 학생들과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제 일원동 주민들은 밀알학교를 반상회, 부녀회 및 각종 모
임과 회의를 위한 장소로 마음껏 사용한다. 처음 학교가 들어설 때 대립했던 껄끄러움이 나눔과 소통의 공간을 통해 화해를 이룬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그를 이해할 것인가, 얼마만큼 그들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배우는 장이 있었기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밀알아트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고성래소장은 더 적극적인 공간 나눔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계속해서 지역주민들과 더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다양하게 쓰이면서도 지역주민들에게 누림과 함께함이 있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지역주민들만 위한 일이 아니라 밀알학교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밀알학교 학생들은 베이커리와 카페에서 일하는 경험을 통해 사회적응훈련 및 직업재활훈련을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것이다. 손님 맞이, 테이블 정리, 청소 같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며 자연스럽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귀한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다.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밀알학교 아이들을 접하며 정서장애아동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진심으로 그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스스로 섬처럼 되기를 자처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에서 섬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섬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를 단단히 묵고 있다. 단지 그 끈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섬으로 만들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밀알학교는 그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