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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현명한 기다림을 시작하다

어두운 조명, 어색한 침묵, 가끔 접시에 부딪히는 포크 소리… 입 속 가득 머금은 크림 파스타는 소금버캐 같다. ‘브로콜리가 이렇게 짤 수 있나?’ 저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지는데 상대편 남자가 말을 건다. “교회 다니신다고요?”

적당히 그러려고 했었다!
교회 구석구석 밟히고 차이는 노처
녀 중 연륜으로는 단연 선두 그룹, 인사를 하기 보다는 동생들에게 주로 인사 받는 왕고. 어릴 때부터 본 권사, 장로님들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선수 못지않은 실력으로 날쌔게 피해 다니는 나. 그러나 그런 나도 가끔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다름 아닌 결혼, 돌 이종 세트. 그곳에서는 표정관리가 안될 만큼 원 없이 폭탄 세례를 받는다. 시집은 아직 읽을(!) 나이라고 응수해보지만 끈질기게 걱정해주시는 교회 어른들 덕분에 만신창이가 되는 것이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자신감 넘치던 20대 중반엔 ‘교회 안의 남자 가뭄이 애굽의 흉년보다 더하다’는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폭소케 했었다. 좌우 위아래 아무리 살펴보아도 선善하지 않은, 가뭄보다 더한 상황을 신앙심(?)으로 이겨내며 성경공부에 앞장서고, 청년들과 이리저리 놀러 다녀보기도 했지만 결국 주말과 연말은 종말(!)과도 같았다. 그 길고도 지난한 기다림 속에 교회 여자 청년들과 내가 내릴 수 있었던 선택은 결국 선이나 소개팅. 믿는 남자는 열의 하나 될까 말까한 낯설고 기막힌 현실이었다. “교회 다니신다고요?” 다음에 이어지는 빤한 질문들. 하나님은커녕 형식적인 종교생활 자체에도 관심 없는 이들과 만나는 무미건조함 속에서, 전도할 목적이라면 몰라도 내 인생을 다른 누굴 구원하기 위해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길고도 긴 기다림속에 그러한 만남이라도 놓치지 않고자 적당히 타협하며 ‘결혼’이란 끝을 본 교회 언니, 친구, 동생들은 그렇게 하나씩 늘어만 갔다.
부모님이 장로, 권사인 내 친구는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 바로 코앞에 교회가 있어도 나가질 않는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때론 평범하고, 종종 행복해 보이기도 했지만, 조급한 마음에 내린 결정으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에서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영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남편, 믿지 않는 아버지를 둔 자식들을 낳았다. 잘살기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들의 영적 상태는 싱글인 나보다 더한 살얼음판을 걸었고, 또한 걷고 있는 중이다.

사랑을 기다리는 이에게
부모와 자식은 선택할 수 없지만 남
편은 선택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그 유명한 말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두려움과 초조함에 내린 결정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 없이 아직도 현재 진행을 살고 있는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상담해오는 동생들에게 ‘오늘’ 내린 나의 ‘선택’을 들려준다면 이렇다. 이제 정말로 딱 한 번만 더 말해줄 거야. 잘 들어! “외로울땐 충분히 외로워하자. 내 외로움 때문에 이성을, 타인을 이용하지 말고. 또 남자 아니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사랑해보자. 그리고 나 자신을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나 홀로 당당히 설 수 있을 때, 나와 함께 두 발을 땅에 딛고 걸어줄 그 사람을 찾아보자. 사람은 내게 완전한 자유와 100% 완벽한 사랑을 줄 수 없어. 그것을 나와 함께 할 반쪽에게서 기대하고 있다면, 잠시 내려놓자. 정작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를 돌아본다면 수십 가지 빽빽이 적은 배우자 기도문은 박박 찢어 쓰레기통에 넣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여유가 되면 교회 안도 꼭 둘러보렴. 중요하다~ ^^ ”

배성분|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내 안의 그분과 대화하며, 때론 나를 잃을지라도 이젠 사랑하고 싶다 꿈꿔보는 철딱서니 직장인